이수진 - MacPhail Center for Music 상주예술가
김현채 : 처음에 미국으로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수진 : 저는 결혼과 동시에 2004년에 미국에 오게 됐는데요, 그 때 당시 남편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니까 그럼 나도 같이 공부를 하면 좋겠다 생각을 했어요. 제가 당시 석사수료하고 논문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대학원을 끝내고 나서 미국에 와야 되니까 결혼 날짜 잡아놓고 억지로 논문을 써서 끝내고..(웃음) 와서 Ethnomusicology를 공부하고 싶어서 그걸로 석사학위를 했어요. 그 다음에는 애기 낳고 또 잠깐 남편 직장 때문에 한국에 다시 들어가게 돼서 미국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한 몇 년이 또 흘렀어요. 그 다음에 미네소타로 온 게 2011년인데 그때는 한국에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 교육을 공부했어요. 왜냐하면 음악 교육이 한국에 많이 필요할 거다 그랬거든요.
김현채 : 왜요?
이수진 : 당시에 국악한 사람이 음악 교육으로 박사 받은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교수님들이 추천을 해 주셨고 저도 음악선생님이셨던 엄마의 영향으로 음악교육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박사를 시작했는데 끝날 때쯤 그냥 여기서 자리를 잡게 됐죠. 그렇게 저는 상당히 가족이 상황에 맞추어서 지냈는데, 이제 남편이 미네소타에 자리를 잡게 되고 애가 커가고 하면서 내가 여기서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그때 미네소타 대학을 다니면서 알게 된 서울대 성악하는 선배 언니가 추천해 줘서 MacPhail Center for Music 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거에요. 박사학위 하면서 얻은 게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인맥인 것 같아요. 또 한국 음악을 하니까 미네소타 한인입양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장미 아트(JangmiArts)에서도 강사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김현채 :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는 국악과에서 가야금 전공을 하셨고 미국에 오셔서 인류음악학(ethnomusicology)과 음악교육을 공부하셨어요. 국악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해외에는 국악과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과로 가야 하는지 되게 고민하는데요, 많이들 인류음악학을 추천하지만 그게 사실 실기 했던 사람들한테는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다른 대안을 찾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수진 : 저는 인류음악학이 할 때는 재미있었는데 전공을 바꾼 데는 한국에서 교수님들이 음악교육을 많이 추천해 주신 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원래 민족음악학을 공부할때도 가르치는 방법 페다고지 쪽으로 관심을 두고 있었거든요. 그리 제가 한국에서 교직을 해서 국악고등학교에도 잠깐 있었고 인문계에 1년 기간제 음악 강사로도 활동하면서 가르치는 일을 했었어요. 가르치는 게 재미도 있었고 적성에도 맞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그때 아는 분 부탁으로 대학교 유아교육과 학생들을 상대로 유아 음악 교육 수업에서 국악교육부분을 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 유아 교육 책들 서너 권에서 국악 세션을 참고로 봤는데 국악이 아닌 것들인 거에요. 국악곡이 아닌 것들일 뿐더러 이상하게 되어 있는걸 그 때 보고는 음악 교육 분야에 국악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직접 깨닫게 됐죠. 아무래도 나중에 직업을 생각해야 되니까 조금 더 뭔가 내가 필요한 일을 하는 게 좋겠다. 그때만 해도 음악 교육으로 박사를 따고 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어요.
김현채 : 그러면 어떻게 다시 한국에 안 가시기로 결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이수진 : 일단 가족이 있으니까 그렇게 일단 여기서 할 일을 찾아보자 하는 게 제일 컸던 것 같아요. 나는 내가 길을 개척하거나 찾아서 어디를 떠나거나 이러지 않고 그냥 주어지는 대로 찾아서 하는 성격인가 봐요. 그래서 이제 일단 내가 박사 학위를 끝냈을 때 박사학위를 끝내는 것도 또 질질 끌었거든요. 거의 마지막까지 안 쓰면 취소된다 해서 썼는데, 논문을 썼을 때만 해도 남편은 여기에 자리를 잘 잡고 아이도 적응을 잘 하고 있는데 내가 혼자 한국에 들어가서 혹은 미국의 다른 주에 가서 자리를 구하겠다 뭐 이런 생각이 별로 안 들었어요. 그래서 움직이게 되면 같이 움직이고 아니면 여기서 일단은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하고, 또 나중에 같이 들어가게 되면 또 한국 들어가서 할 일을 찾자..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얼바인에서 석사학위를 할 때나 미네스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도 혼자 지내던 시간이 좀 있었거든요.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들어가고 제가 혼자 남아서 학교 다니고 이런 시간도 있었고, 미네소타 대학도 지금 제가 사는 집에서 가깝지는 않아요. 1시간 반 정도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거기를 매일 왔다 갔다 하는 건 좀 힘들어서 제가 주중에는 Minneapolis(미네소타의 주도)에서 지내고 주말에 이제 집에 내려오고 이렇게 지냈거든요. 이런 시간들이 쉽지가 않았어서 또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김현채 : 아이도 있으셨는데 정말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졸업 후에는 어떠셨나요?
이수진 : 그러고 나서 이제 맥페일(MacPhail Center for Music)센터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면서 그때는 내가 이 박사학위를 언젠가는 쓰리라 이런 생각으로 계속 지냈어요. 처음에 제가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는 당연히 여기서 교수가 되고 싶었죠. 교수가 되고 싶어서 지원을 하려고 알아봤는데 저는 일단 본거지가 여기 미네소타 로체스터에 있으니까 제가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움직일 생각은 들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제가 이 근처로 학교를 알아보다 보니까 제가 음악 교육 박사를 했어도 미국 공립학교에서 경험이 몇 년 이상 있어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음악 교육은 음악 선생님을 키워내는 거니까. 그래서 미네소타에 있는 대학교들에서 공고가 났을 때 지원자격에서 이게 recommended(권장)이 아니고 required(필수)였어요. 아마 리서치 중심으로 하는 학교들이 있다면 학교 경험을 중요시하지 않을 텐데 그런 리서치 중심의 학교들은 랭킹이 높은 학교겠죠. 그런 학교는 미네소타에는 없고, 그러다가 맥페일에서 일단 일을 시작하게 됐고 그 안에서 이것 저것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김현채 : 그러면 선생님이 계신 그 맥페일은 어떤 기관인가요?
이수진 : 맥페일은 설립된지 100년 가까이 된 비영리 음악교육 단체에요. 생후 6개월 아기부터 100세까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각기 다른 음악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보통 뮤직 스쿨(사설교육기관들)들은 그냥 사업자들이 많잖아요, 그냥 레슨해주고 돈 받고. 그런데 여기는 레슨도 있고, 또 스쿨 파트너십을 맺어서 음악 선생님이 없는 학교들에 교사를 파견하기도 해요. 시골이라든지 예산이 충분치 않은 학교들은 선생님이 없거나 부족하거든요, 지금 제가 사는 로체스터도 한 선생님이 두 학교를 가르쳐요. 그런 학교들에 선생님을 보내고 또 nursing home(요양원) 프로그램, music therapy(음악치료) 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요. 요즘에는 좀 더 확장한다고 전자 음악도 하고, 재즈도 있고 그러니까 저 같은 한국 음악 하는 사람도 처음에 웰컴 하면서 받아들인 거죠.
김현채 : 그러면 그런 뮤지션들을 다 고용해서 일을 주는 건가요?
이수진 : 그게 셀러리 개념은 아니고 내가 거기서 가르치는 시간만큼 돈을 받아가요. 샐러리를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가 이 주변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 뮤직 스쿨이다 보니까 여기서 가르친다고 하면 적어도 음악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보증이 된다고 할까, 약간 그런 것 같아요.
김현채 : 그걸로 아티스트가 생계를 유지하는게 가능한가요?
이수진 : 그게 좀 애매하죠. 한국에서도 음악가들은 레슨으로 많이 벌이를 하잖아요. 연주로 벌이를 완전히 할 수는 없죠. 그러니까 여기서도 똑같은 것 같아요. 저도 연주도 하지만 수입으로 봤을때 연주가 저의 메인 수입원은 아니에요. 저도 연주가 들어오는 대로 거의 다 하려고 하는데 프리랜서라는 것이 원래 문의가 많이 들어올 때도 있고 또 별로 안 들어올 때도 있으니까요. 어찌보면 예술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인데 연주만으로는 당연히 힘들어요.
김현채 : 맥페일센터에서는 공연 같은 것도 기획 하나요?
이수진 : 네, 공연도 주관하기도 하고 faculty(교직원)한테 기회를 주는 리사이틀들도 있어요. 자체에서 크게 하는 공연이 1년에 4번 정도 있거든요. 그중에 하나를 이제 Faculty Spot Light라고 해서 기회를 줘요. 소정의 연주료도 제공되고요.
김현채 : 그러면 맥페일에서는 클래스 해서 받는 강사료가 대부분의 수입이겠네요. 그러면 수업이 엄청 많아서 그걸로 먹고 사는 아티스트도 있나요?
이수진 : 네, 피아노나 바이올린 선생님들은 그래요. 제가 아는 성악가 분도 거의 일주일에 40시간인가 레슨하세요. 주말에도 나가고요. 왜냐하면 주 40시간인가 해야지 보험이 되는 거로 알고 있어요. 인기 있는 악기들에 한해서 가능한 거죠. 제가 거기서 하는 일은 가야금 수업도 하고 학생이 지금 한 6명인가 7명인가 있고 그다음에 Jangmi에도 학생이 한 6명 있어요. 그리고 거기서는 프로그램이 많으니까 저한테 가끔씩 컨택을 해요. 우리가 이런 프로그램 하는데 와서 좀 해달라고. 말하자면 널싱홈에 보내는 프로그램에서 니가 올해에 좀 해줄래 이런 식으로요. 그 다음에 학교 파트너십에서는 레지던시 아티스트를 뽑아요. 저도 그걸 하고 있어요.
김현채 : 어떤 학교에 가시나요?
이수진 : 센터 내에 School Partnership Department가 있는데 거기서 서양음악 아닌 음악들을 하는 음악가들로 레지던시 아티스트를 뽑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맥페일에서 돈을 주고 학교 쪽에서는 공짜로 이 사람들을 초청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는 거예요. 원래 연 단위로 뽑는데 저는 매해 같이 하게 돼서 한 4~5년 된 것 같아요. 그거는 제가 1년에 40시간 가서 가르치면 되는거에요. 맥페일에서 저한테 학교를 연결해 주기도 하고, 또 제가 저희 집 근처에 있는 학교 가고 싶다고 하면 그 학교를 콘택해서 그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만난 미국학생들이 토탈 한 25,000명 정도 돼요. 어떤 학교는 Kindergarten 부터 5학년까지 다 만나거든요.
김현채 : 엄청나네요!
이수진 : 커리큘럼도 제가 학교에 그냥 맞춰서 노래하고, 가야금 들려주고, 또 그 학교에서 원하거나 사정이 된다면 사물놀이도 가르쳐요. 그게 너무 재미있는 일인데 제가 여기 오고 미네소타 대학에서 음악 교육 시작했을 때 여기 MMEA(Minnesota Music Educators Association)라고 각 주마다 음악 선생님들 모이는 협회가 있거든요, 거기서 제가 사물놀이를 한번 소개했었어요. 워크숍으로 소개를 했었는데 제가 사는 동네인 로체스터에 있던 어떤 음악 선생님이 제 워크숍에 참가한 다음에 장구를 산 거예요.
한 10-15개 정도. 그래서 제가 그 학교 가서도 가르치고 그걸 같은 지역의 다른 학교에서 빌려서 제가 가져가서 거기서 가르치기도 하고 그래요.
김현채 : 그럴 수도 있군요. 그럼 평소에 강의 다니실 때는 악기를 선생님이 다 조달해서 가져가시나요?
이수진 : 네. 로체스터에서 할 때는 그 학교 내에서 알아서 하는 거고 저도 장구를 좀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한국음악을 가르치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볼까 계획한 적이 있었어서… 그리고서는 곧 판데믹이 시작되서 흐지부지 되어버렸지만요.
김현채 : 앞으로도 그런 단체 같은 거 만들 계획 갖고 계세요?
이수진 : 당장은 아니지만 좀 네. 생각은 하고 있어요. 미네소타는 미네아폴리스의 Jangmi Organization이 있어요 장미 오가니제이션이 있기 때문에 거기랑 협업하는 것도 괜찮지만 거기는 아무래도 Twin-Cities 도시 중심이 되거든요. 저는 그 도시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Southeast 미네소타에 있는 건데, 그래서 저는 약간 이쪽을 베이스로 한 뭔가를 만들고 싶어요. 제가 사는 도시인 로체스터는 그래도 다양한 인종이 있는 편이지만 그렇다해도 도시보다는 다양성이 떨어져요. 한인이 200명 정도 그리고 인도 중국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주로 백인 비율이 높고요. 그런데 여기서 한 30분만 나가도 되게 다 시골이에요, 백인만 있는…. 다양한 이런 음악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시골 학교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서 이 쪽 지역에 기반을 둔 단체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요. 한 5, 6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에 가서 한국에서 왔다고 그러면 North Korea? South Korea? 그랬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그런 말 안 하고 Kpop 얘기 많이 하고, 이제 한국 문화를 알다 보니까 저보고 한국 핫도그 먹어봤냐 이런 것도 물어봐요. 그리고 애들 하는 무슨 핸드폰 게임에도 이런 가야금 소리 비슷한 악기가 이용이 되나 봐요. 그래서 자기가 하는 게임에 그거랑 똑같은 소리 난다고 얘기도 해주고요.
김현채 : 가야금이나 장구를 배우고자 하는 청소년들도 있나요?
이수진 : 저는 그게 참 안타까운데 애들은 없어요. 제 가야금 학생분들은 다 성인 분들이거든요. 여기 미네소타의 어릴 때 입양 오신 입양아들이라든지 아니면은 이민 오신 분들이에요. 시카고의 KPAC 에는 아이들이 많잖아요, 그러면은 부모님도 다 인볼브가 되면서 이제 가족이 같이 하기가 쉬운데 그냥 어른이 할 때는 그게 좀 어려워요. 그래서 앞으로 좀 해보고 싶은 부분 애들을 좀 가르쳐서 얘네들로 한번 그룹 연주 시켜보고 싶어요. 또 아이들은 부모님이 일단 좀 서포트를 많이 해줄 테고.
김현채 : 그럼 거기 한글학교랑 어떻게 좀 연계하는 그런 프로그램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수진 : 여기 한글학교가 없어요.
김현채 : 아 정말요?
이수진 : 네. 여기가 한국 입양아를 중심으로 한 그런 여름 캠프는 있었는데 거기서 사물놀이도 가르치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것도 이제 없어졌어요. 지금 입양아도 많이 줄고 또 부모님들 중에 그런 거를 이끌고 싶어 하는 분들이 없고 그래서 지금 그것도 올해부터 열리지 않는 상황이에요. 또 이민 오신 한국 분들은 전통음악에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아요. 예전에 제가 로체스터에서 사물놀이랑 가야금 수업을 시작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결국은 제 아는 분들이 수진 씨 봐서 하겠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너무 부담이 되고 뭔가 음악이 좋아서 오시면 좋을 텐데…그러다가 판데믹으로 중지되었죠. 판데믹후에는 제가 바빠지면서 결국 계속하지도 못했구요. 언젠가는 저도 제가 사는 커뮤니티 중심으로 수업이든 단체든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요.
김현채 :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 좀 다른 주제로 가서 선생님께서 미국 내 펀딩을 받아서 아티스트 활동을 하신 경험들이 있으시죠?
이수진 : 그거는 제가 맥페일에서 그랜트를 한 두 번 두 번 정도 받았고, Minnesota State Arts Board 에서 한 번 받았어요. 그게 가장 큰 거여서 만 불을 받았었어요, 2023년에요. 제가 단독으로 받은 거였고요. 제가 가야금 레퍼토리를 더 만들고 싶었어요. 여기에 다른 국악하는 분들이 없으니까 가야금 이제 레파토리가 너무 부족해요. 그리고 한국에서 했던 가야금 곡들이 너무 조용하게 끝나는게 많아서 약간 이렇게 바바바바바 하고 끝나서 사람들이 끝나고 박수치는 그런 곡을 좀 연주하고 싶었어요.
김현채 : 네, 미국 스타일. 미국은 좀 그런 음악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비어 있는 것 같아요, 대체로 한국에서 많이 쓰는 가야금 곡들이.
이수진 : 그리고 제가 서울대를 나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무 진지한 거예요. 저는 그냥 사람들이 친숙하게, 테크닉이 어려운 가야금 곡을 내가 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람들한테 다가가는 거를 하고 싶었는데 그런 게 아무리 찾아도 별로 없으니까 그런걸 좀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Minnesota State Arts Board에서 그랜트받은걸로 연주한게 지난여름인데 그때는 제가 같이 연주하고 싶은 연주가들이 몇 명 있었거든요. 한 명은 터키에서 온 피아니스트고, 또 하나는 첼로 하는 뮤지션인데 저랑은 몇 번 같이 연주를 했었어요. 그 사람은 여러 가지 음악을 굉장히 많이 하거든요. 재즈는 물론 클래식도 하지만 여러 가지 장르를 많이 탱고 보사노바 등 여러 가지를 해가지고 그런 아이디어를 얻어서 얘네들이랑 좀 같이 뭔가 해보면 좋겠다. 또 다들 이제 맥페일 패컬티들이라 원래 알고 있었고요. 또 이제 미네소타 대학 다닐 때 친해진 교수님인데 덜 시머를 연주해요. 그분이 Jewish인데 유대인음악을 해서 가야금으로 연주해보면 어떨까 해서 그것도 넣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연주회 1시간 내에 그분들이 한 곡씩 자기 곡들 연주하고 그 다음에 제가 쥬이시 음악, 터키시 음악 그리고 보사노바 음악을 하나씩 배워서 같이 연주하고, 한국 음악도 그분들이랑 같이 연주했었죠. 작년에 했는데 잘 됐고 그걸 약간 좀 확장할 생각도 하고 있어요. 특히 로체스터 분들이 많이 좋아했어요. 저의 목적은 어려운 걸 하는 게 아니고 터키 사람들이 왔을 때 저거 내가 아는 노래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걸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분들이 와서 실제로 그 연주자들한테 얘기하고 그런 노래 들으니까 너무 좋다고 그랬어요.
김현채 : 그러면 이 펀딩은 조건이 일단 영주권자라든가 뭔가 레지던트라는 게 증명이 돼야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이수진 : 저는 시민권이 있어서 이제 그걸로 어플라이을 했었어요. 그리고 지역에서 나오는 펀딩을 받으려면 아무래도 지역 주민이 어플라이를 해야 되는 것 같아요. 미네아폴리스 시티 지역의 뮤지션에게 주는 그랜트 있거든요. 근데 저는 그걸 어플라이를 못해요. 거기 안 살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자 스테이터스가 다르면 좀 어렵죠. 근데 대신에 다른 그랜트, 한국 영사관 그랜트 한국 정부에서 주는 그랜트 등 다른 기회를 찾아야 되겠죠.
김현채 : 맥페일에서 받으신 지원금은 패컬티한테 주는 거였나요?
이수진 : 네. 그것도 McKnight Foundation 이라고 여기서 예술 쪽으로 되게 큰 그랜트 주는 기관이 있거든요. 그 맥라잇에서 음악 쪽으로 주는 그랜트를 맥페일에서 운용을 해준다고 할까, 그러니까 맥라잇에서 우리가 음악 쪽으로 펀딩할 뮤지션을 니네가 찾아줘, 그러면 맥페일에서 이제 하는 거였는데 그때 패컬티 대상으로 했어서 제가 성악하시는 분이랑 두 번 어플라이 해서 앨범 만드는 걸로 받았어요. 앨범이 하나는 나왔고 하나는 제가 특징이 질질 끈다고..(웃음) 데드라인이 코앞에 닥치지 않으면 안 하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두 번째 앨범이 나오지 않았어요.
김현채 : 한국에서 누군가가 미국으로 활동하러 온다고 했을 때 뭘 준비하라고 하라고 하실 것 같으세요?
이수진 : 즉흥 음악 쪽으로 많이 공부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즉흥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 자체가 누구랑이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여기서 만약에 그런 즉흥 음악을 많이 하는 연주자가 있으면 그 사람들이 바로바로 초대해 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어떤 곡이든 연주할 수 있는 편곡 능력이라든지. 내 레퍼토리를 다른 악기랑 하는 게 아니고 또 독주만 하는 것도 한계는 있으니까 어느 악기랑이든 할 때 내가 바로바로 연주할 수 있는. 그런 공부를 좀 해가지고 오면은 아티스트들이랑 협업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현채 : 또 한국은 잘하냐 못하냐 이거에 되게 포커스인데 미국은 좀 그런 게 덜 하다 보니까 뭐 즉흥을 해도 어쩔 땐 좋지만 아닐 수도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저게 뭐야.. 좀 그러잖아요. 근데 미국은 좀 그런 게 덜한 것 같아요. 그냥 뭘 해도 그냥 소리가 나면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좀 있어요.
이수진 : 다들 좋아하니까. 근데 이제 그게 더 기회를 많이 줄 수 있고 결국은 다 일단은 이름을 알려야지 일도 들어오는 거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뭔가 내가 어떤 레포토리를 연주하는 거에만 갇히는 게 아니고 내가 창작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많이 키우면 좋겠어요. 그 다음에 제가 학교 가서 가르치는 것도 하지만 맥페일에서 저는 피아노도 가르치거든요. 피아노는 미니아폴리스에서 가르치는 건 아니고 로체스터에서 가까운 조그만 도시가 있어요. 스팸이랑 베이컨만드는 유명한 회사가 있는 오스틴이라는 작은 도시인데 거기가 시골이지만 큰 회사가 있다보니까 좀 열려 있고 부모들이 음악 교육을 시키고 싶은데 피아노 치는 사람은 없거든요. 근데 거기에 그 회사가 맥페일한테 큰 금액을 기부하면서 그 도시에 맥페일 사이트를 오픈해달라고 했어요. 거기서 피아노 선생님이 너무 부족하다고 그래서 제가 나 우리 집에서 가까우니까 내가 간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거기서 가르쳐요. 거기는 항상 애들이 웨이팅 리스트에 있어요. 그래서 막 제가 며칠 더 가르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너무 주객이 뒤바뀌는 건 또 원치 않아서 일주일에 두 번만 이렇게 가르치는 걸로 하고 있어요.
김현채 : 선생님께서 피아노도 되게 잘 치시나 봐요.
이수진 : 아니요. 피아노 절대 잘 치지 않고 그냥 체르니 40번 중간 정도 치고 끝났어요, 거의 그렇잖아요. 한국에 음악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수준인데 그냥 여기는 피아노 전공하고 잘 연주하는 연주가보다는 음악 교육 전공한 사람을 또 선호하더라고요. 제가 느낀 거는 애들은 악보 읽는 걸 가르치고 잘 다루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김현채 : 근데 이런 일들이 다 선생님이 하실 줄 안다는 걸 알려야 해달라고 제안을 할텐데, 어떤 방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나요?
이수진 : 그건 제가 그 맥페일이라는 단체 안에 있으니까 그런 기회들이 저한테 이제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제가 피아노 가르치는 오스틴 사이트에서 피아노 선생님을 찾는다 너무 부족하다 이런 말을 한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이메일로 전체 이메일이 돈다든지, 아니면 어디 공지에 올라온다든지…. 그런 얘기가 들려오면 내가 해볼까 그러면서 제가 그때 연락을 하는 거고요. 제가 하는 Student Performance Coordinator도 맥페일 페컬티 중에서 뽑아요. 사실 음악을 한 사람들이 피아노, 바이올린 뭐 이런 사람들 말고는 연주나 레슨이 많지가 않더라고요. 관악기 호른 트럼본 이런 거 하는 사람들은 제가 학생 6명 있는 것도 되게 놀라워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들은 석사 학위가 있고 박사학위가 있어도 저 같이 코디네이터 일도 하고 이거는 사실 박사학위가 필요하지도 않은 일인데 많이 하고 그냥 안내 데스크에 앉아서 하는 것도 몇 시간씩 하고 그래요. 행정 일들도 그런 맥페일 선생님들 중에서 많이 뽑아요. 그런 기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김현채 : 그러니까 맥페일이 인력 풀이기도 하고 일자리 풀이기도 하고 막 그러네요. 아티스트에게 되게 좋은 단체인 것 같아요. 많이 들어가고 싶어 할 것 같아요. 경쟁이 좀 있나요?
이수진 : 자리가 나서 뽑는다고 하면요, 인기 악기 피아노 같은 거는 TO가 자주 있어요. 그리고 한 번 계약을 하면 계속 연장이 돼요. 맥페일에서도 부담은 없는 게 그냥 니가 일하는 만큼 가져가는 시스템이니까 정해진 월급이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 음악계 내에서의 어떤 사이드 잡 같은 거는 나만 하는 게 아니고 석사나 박사학위 가진 다른 연주자들도 다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는 일단 연주 기회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도 보면은 거의 공짜로 장소 대여해 주는 데도 있거든요. 거의 공짜로 해주는 Pub 그런 데 맥주도 팔고 음식도 팔고 그러는데 일층과 지하가 있거든요. 일층은 보통 pub같이 운영하고 지하는 아예 그런 연주 장소로 제공을 하고. 공짜로 제공하고 대신에 거기 오는 연주 관객들이 이제 음식을 시켜 먹는 거죠. 그런 식으로 해서 그냥 입장료를 받지 않더라도 도네이션만 해도 미국 사람들은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또 요즘 한국에서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가지고 제가 모르겠지만 학교에 갇혀 있지 말고 그냥 거리에 나가서 이렇게 다른 연주를 많이 해보면은 이제 보통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런 거를 많이 해보고 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김현채 : 맞아요. 사실 한국에서도 되게 국악계와 비국악계가 단절돼 있어서 그렇지 밖으로 나가서 하다 보면 같은 고민들 하게 될 것 같아요. 요즘 가야금으로 케이팝이나 자기 자작곡 연주도 많이 해요, 아카데믹한 곡은 정말 학교 시험용이 대회고 저때랑도 또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점점 희망적이에요. 오늘 긴 인터뷰 감사합니다.
김현채: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음악박사 (DMA), 서울대학교 국악과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미국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KPAC) 상주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트링웨이 대표이다.
이수진: 서울대학교 국악과 및 동대학원 졸업(가야금),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 인류음악학 졸업 (석사), 미네소타대학 음악교육학 졸업 (박사) 하고, 현재 MacPhail Center for Music 상주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