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홍 - 인류음악학 박사수료

김현채 : 김선홍 선생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선홍 :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미시간대학교 음악학부 안에 있는 인류음악학(Ethnomusicology)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김선홍입니다. 현재 박사 5년차라 논문을 쓰고 있는데요, 논문 주제로는 한국의 정체성이 발현되는 음악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제가 국악 전공자로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면서 중점적으로 배웠던 주류 국악 뿐만이 아니라 국악을 조금 더 넓게 보는 관점에서 여러 음악들을 연구하고 있어요. 

김현채 : 피리 전공으로 한국에서 석사까지 하셨는데 인류음악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선홍 : 2018년 제가 석사과정 중일 때, 은율탈춤의 공연을 하는 분들과 교류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음악을 바라보는 새로운 생겼어요. 그 때까지 저의 음악 연주의 목적은 전문성을 키우기 위함이었는데, 연행자 분들에게는 음악이 개인적 삶과 긴밀한 연관이 있었어요. 그 때 이후로 연구에 흥미를 가졌고, 현 사회와 맞물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다보니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김현채 : 은율 탈춤이라면 이북지역에서 유래된거죠? 실향민 분들이 연주하시는 음악이었나요?

김선홍 : 네, 은율 탈춤은 이북 지역에서 연행되던건데 그걸 연주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 실향민 2, 3세대였어요. 황해도에서 이주하신 분들 30%이상이 인천 지역 거주민이었기 때문에 인천에서 은유 탈춤이 복원되고 있었어요. 고향 지역에서 파생돼 이주 후에도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것을 보고 제가 크게 영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은율 탈춤이 이후에는 복원작업과 민속예술 경연대회 등 여러 노력 끝에 무형문화유산으로 승급이 됐죠. 그때 당시 북한지역 문화의 하나로 강령 탈춤도 지정이 됐었는데요, 제 생각에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활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이 왜 이렇게 열심히 하시나 하는 생각에 신기해서 궁금증을 가지게 됐던 거죠. 당시 음대생인 제 입장에서는 음악을 한다는 것은 전문성을 목표로만 했었으니까요.

김현채 : 그게 음악인으로서는 좀 새로운 뷰를 좀 가지게 됐겠네요.

김선홍 : 네. 나중에는 그 분들하고 얘기하다 보니까 제가 생각하는 북한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어요. 저는 대구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자라면서 반공주의 이런 것들 영향을 받기도 했고 중학교 때는 학교에 탈북하신 분이 오셔서 특강을 하셨는데 그 힘든 과정을 들었을 때 내가 사는 현실과 굉장히 다르니까 북한은 되게 뭔가 힘든 나라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나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분들과 같이 지내면서 북한은 우리나라지 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우리’라는 개념이 확장되었어요. 사실은 북한의 무고한 시민들은 정부나 북한의 정권이 만들어가는 그 이미지와는 또 다르게 봐야겠다 그런 고민을 제가 했던 것 같아요. 

김현채 : 그러다가 어떻게 미국 유학을 준비하게 되셨나요?

김선홍 : 제 전문 분야는 전통을 베이스로 한 연주인데 이걸 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아예 다른 걸로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노력해서 얻은 이 지식과 내부자로 들어가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노력과 결실들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특히나 그래서 이제 석사도 하는 와중에 사실 그만두고 박사 준비해야지 이렇게 했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석사를 마무리하고 싶었고 그러면서 인류음악학 공부를 했어요.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개설한 논문 세미나 수업을 청강했는데 그 때 국악하시는 분들이 인류학과 와서 박사공부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인류학으로 공부할 수 있겠구나 알게 되었어요. 미국으로 선택한 것은 당시에 제가 영어를 할 수 있었고 또 미국은 학비, 생활비, 보험까지 지원이 되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데 유럽은 그걸 잘 못들어 본 것 같아요.

김현채 : 학교를 알아보실 때 어디 어디 알아보셨나요?

김선홍 : 저는 학교를 보지 않고 학과를 먼저 생각해서 Ethnomusicology가 있는 학교들을 찾아봤어요. 지원을 아마 한 10군데 정도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붙은 곳이 몇 군데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미시건이 장학금을 가장 많이 주시더라고. 학교 알아볼 때 미시간대학교는 학내 연구소에 한국학연구소가 굉장히 잘 돼 있다는 걸 느꼈었어요. 대학원생들을 위한 학술회장이 매년 열리고 있다는 것과 그 아시아 학과가 굉장히 크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김현채 : 장학금이 얼마 정도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김선홍 : 제가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제가 미시간에 붙기 전에 국악원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월급보다 많이 줬어요. 학비 전액 지원이고 플러스 월 생활비로요. 그 다음에 보험도 되고 5년 펀딩이었고요. 매년 임금상승이 있잖아요, 그러면 학내에 대학원생 노동조합이 있어서 인플레이션에 따라 3년마다 계약 협상도 하거든요. 박사생은 5년 계약이지만 노조의 협상으로 인해서 인사팀에서 인플레이션 만큼을 더 주는 거예요.

김현채 : 근데 이게 한국하고 물가가 다르고 그러니까 그게 절대적 액수로 비교할 수 없는데 그게 대학원생으로서 생활하기 충분했어요?

김선홍 : 사실 충분했어요. 개인 차가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미국 연방 정부에서 정하는 이 지역에 살면 이 정도 물가는 된다라는 기준이 있는데 그거보다 많이 줬어요. 사실은 더 아끼면 안 쓸 수도 있는 상태고 예를 들어서 룸메를 껴서 같이 절반으로 나눈다든가, 기숙사도 있고 들어갈 수도 있고, 또 차를 아예 자기가 사서 조금 더 외곽으로 가면 훨씬 더 비용이 거의 절반 이상 감소되고 등등 방법들이 있겠죠. 

김현채 : 인류음악학 연구를 하면 연구비도 들텐데 그것도 학교에서 주나요?

김선홍 : 학교에 그런 연구비 명목으로 신청할 수 있는 연구 애플리케이션들이 항상 나와요.

예를 들어 그러니까 제가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했는데 중국어 어학연수가 있어요. . Award라고 해서 학교 내부에  학과 말고 다른 institute들이 있어요. 그러면 제가 거기에다 저 그 수업 듣고 싶은데 그 수업 비용과 거주 비용 등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하면서 제가 다 예산을 짜서 지원을 해요.

되면 그럼 거기서 받은 거예요. Grant를 받을 수 있는 항목들이 정말 차별화되어 있거든요.

학과에서도 운용할 수 있는 돈이 있어서 내가 여름에 뭐 할 건지 써서 지원하거나 이미 받았는데 만약 부족하다고 하면 추가로 더 지원할 수도 있었어요.

김현채 : 들어보니까 자금적으로는 풍족했는데, 그래도 유학생활이잖아요. 힘든 건 없었나요?

김선홍 : 힘든 게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근데 일상생활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사실 제가 왔을 땐 코로나여서 사람을 못 만나고 룸메랑만 친했죠. 영어 하는 거는 사실 제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처음에는 못해도 계속해서 말하면서 저를 스스로 약간 성장을 시켰던 것 같아요. 사람이 진짜 뭐가 필요하면은 말을 하지 않아도 정말 눈만 제스처를 해도 제 짧은 영어를 해도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제 그게 언제 부딪히냐면 제가 수업을 들으면서 발표를 하고 제 페이퍼를 써야 되고 교수님한테 끊임없이 제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보여줘야 되니까..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죠. 일주일에 수업을 3개를 들으면 매주 읽으라고 하는 게 20페이지짜리 논문 적어도 네 다섯 개거든요. 어떤 수업은 매주 책 한 권을 읽으라고 할 때도 있어요. 일주일 내내 논문 네 다섯 개와 책 한 권을 읽으라고 했는데 그거 읽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김현채 : 와, 그것도 영어로.. 상상도 안 돼요.

김선홍 : 다행히 선배들이 많이 조언을 해줘요. 일단 미국은 그냥 주관식이니까 첫 번째 이걸 먼저 읽고 마지막에 읽고. 그 다음부터 그래서 어떻게 공부했냐면 읽다가도 갑자기 막히면 그냥 유튜브 틀어서 유튜브에 이론 같은 거 얘기할 때 중요한 학자 이름 나오면 그거 들어보구요. 그런데 가장 이해가 안 됐던 이유는 제가 서양 음악을 전체적인 흐름을 대충 알아도 자세한 음악적 예시까지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거든요.

근데 이제 그 유명한 미학이나 이런 음악학 내부에서 다 중요한 담론으로 다루는 음악 방법이나 그런 것들이 굉장히 유럽음악이 중심이예요. 음악적 예시들이이 그러니까.. 그럴 때 제가 이게 너무 모르니까 힘들게 다가오는 거예요. 나 인류음악학 공부하러 온건데, 나의 전문분야를 연구하는 것도 너무나도 중요하고 그걸 이제 새롭게 이론적 틀을 찾는 하는 것도 더 시간이 들어서 이 고민해야 되는데, 그 고민할 시간이 없이 계속해서 유럽 중심의 음악 예시로 한 그 분야를 읽어야 하니까. 그게 힘들었어요.

김현채 : 선홍씨가 지금 박사 논문으로 쓰고 있는 주제는 뭔가요? 그리고 그것이 국악 실기주자로서의 경험하고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좀 궁금해요.

김선홍 : 국악 하시는 분들은 전문성을 가지고 다 연주를 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분들의 동기를 찾아보고 싶었어요. 저는 연주 기술적인 측면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쨋든 연주자들이 그 연주 기술을 만들어 오는 것이지만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미학적인 부분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를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이제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 국악을 모티브로 하는 기악 연주자들이 어떤 걸 좋은 소리라고 생각하고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소위 말하는 앙상블을 저희가 분류할 때 정악, 민속악, 관현악단으로 보잖아요. 그럼 각 앙상블 내부에서의 좋은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인터뷰하고 다녔고 그 다음에 국악계 내부에 있다가 나중에 이민을 가신 분들로 더 확장시켜서 그럼 그분들이 계속 한국음악을 연주하는 이유는 무언가. 그분들은 애초에 이제 국악을 하는 이유가 좋은 소리라기보다는 뭔가 이제 정체성을 계속해서 이제 만들어가고 보여주기니까, 이제 그런 것들을 한국 밖에서 어떻게 연행되냐를 보고 있어요.

김현채 : 그러면 경비가 많이 들 것 같은데요, 박사과정에서 드는 연구비는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김선홍 : 연구비는 제가 다 신청을 하는거에요. 인류음악학은 ethnography(민족지학 현장연구)라는 개념으로 직접 연구자가 참여 관찰을 하는 방법론으로서 직접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내부자와 가까운 시선으로 보는 거를 가장 주된 방법론을 하거든요. 그래서 인류학이나 인류음악학이나 지원 비용을 받아 지원할 수 있는 장학금들이 여러 개 있어요. 펠로우들이 사실 2만 불까지도 지원하게끔 하는데 그게 보통 이제 박사 2, 3년 차 때 다들 지원해요. 논문 박사 시험이 통과되면 바로 필드 워크로 나가거든요. 일단 받을 수 있는 기관들이 세 군데가 있어요. 본인의 학과 내부, 그 다음에 학교 내에 있는 연구소 같은 기관들, 아니면 미국 연방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도 있는데 가장 경쟁이 치열한 건 그거예요. 그런데 그런 연방 정부 측에서 지원하는 것들은 미국 시민권자만 지원할 수 있어서 유학생들은 해당이 안 돼요. 저는 처음에 학과에서 지원이 안 되는 줄 알고 외부 기관인 Society of Ethnomusicology에서 dissertation fellowship을 받았어요. 그걸 좀 받고 한국에서도 또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연구원이나 센터들에서 연구비용 지원해주는 게 있어서 그것도 활용했어요. 하나로는 부족하니까 여기저기서 조금씩 모아서 제가 공연 티켓이나 인터뷰한 분들 감사답례 하는 것들을 이제 그런 걸로 충족을 시켰어요.

김현채 : 미국에서 유학하려면 영어는 얼만큼 해야하나요?

김선홍 : 영어를 잘하긴 해야 돼요. 근데 이게 제가 제가 잘했다는 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저도 영어 논문 읽는 거 하나에 정말 2-3일도 못 읽었거든요. 영어는 시간이 답이에요. 그리고 만약 제가 영어 공부를 못해도 유학을 가고 싶어요, 근데 이거는 목적이 중요해요. 영어를 잘한다고 또 유학을 가서 잘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럼 유학을 가고 싶은 그 본인이 정말 생각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저는 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냥 단순히 난 밖에 나가서 잘 되고 싶어 또는 유학을 가고 싶어 해서 되는게 아니라는거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유학을 가고 싶어 해야 되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는 부딪혀야 되는거죠. 한국 사회에서 잘하는 영어가 미국에서 꼭 잘하는 영어는 아니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생각하는 발음이 좋아야지 영어를 잘하는 것 그게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에요.

본인의 생각을 얼마나 영어로 잘 전달할 수 있느냐 영어로 말 못해도 돼요.

근데 그 의사소통 능력이 굉장히 탁월하다. 영어로 전달할 수 있는 원어민이 들었을 때 영어로 딱 글을 봤을 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면 그게 의사소통으로는 대화를 못해도 잘하는 거거든요.

김현채 : 미국 온 후에 본인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왜 이 음악을 하는지에 대한 그 궁금증들이 풀렸나요?

김선홍 : 국악을 국악의 주류를 만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내부자의 시각을 분석하게 된 것 같아요

저도 그 시스템 내부에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외부로 나옴으로써 좀 더 확장된 시야를 가지게 되면서 이전보다 음악을 다른 식으로 의미 있게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한, 음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관점,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진거죠.

예를 들어 해외에 있으니까 국악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 것인가 할 때 더 고민을 하게 되고 해외에 이걸 그대로 보여주면 안 돼, 내가 좋게 생각했던 부분, 나쁘게 생각했던 부분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만 막상 현지에서는 정반대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지역에 감수성이 있잖아요. 거기에 맞춰서 저도 어떻게 국악을 보여줘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고 그거를 국악하는 사람들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김현채 : 마지막으로 유학을 계획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김선홍 : 일단 연주자면 연주자고 연구하고 싶으면 연구하고 그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 있잖아요.

그거를 좀 미친 듯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진심을 담아서. 나 이거 해 하면서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한 번 할 거면 제대로 해라 말해주고 싶어요. 남들의 비판이 있건 말건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해라!


  • 김현채: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음악박사 (DMA), 서울대학교 국악과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미국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KPAC) 상주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트링웨이 대표이다. 

  • 김선홍: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 졸업 (학사/석사), 현재 미시간대학교 인류음악학 박사수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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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hong Kim - PhD in Ethnomusico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