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완 -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 예술감독
김현채 : 어떻게 해외에 나가서 활동해볼까라는 생각을 처음 하시게 됐는지 계기가 궁금해요.
최수완 : 저는 일반 고등학교에서 특별히 마련된 풍물 특기생으로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그때 당시에 청주 시립 관현학단에 재직 중이신 선생님이 경기도당굿 이수자셨고 그 다음에 예종에도 출강을 하셨던 김철기 선생님한테 많이 배웠는데 스승님의 교육 방식, 철학 중 하나가 조금 방목형 교육이었어요. 다시 말하면 좀 다른 경험을 많이 시켜주시려고 하셨는데 예를 들면 지금도 그렇지만 한 선생님한테 배우는 연수생들이 되게 많잖아요, 그게 아니고 저희 선생님은 좀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게 하고 여러 가지를 좀 보게끔 하셨어요. 심지어 시장에 나오는 품바가 되어보라고 할 정도로, 지하철에서 버나 돌리는 연희를 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되게 다양하게 접근을 하셨어요. 그리고 기악을 해야 된다 그러시면서 피리 산조를 하게 하셔서 저는 피리 산조 짧은 산조를 뗐고요, 관현학도 해야 된다 그러면서 악보 공부하고. 그래서 그 고등학교 3년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은 그때 당시에는 물론 어린 마음에 불만도 있었고 그냥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로보트처럼 움직이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 자체가 일단 저에게는 저라는 음악가를 좀 백지화시켜놓은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물감이 닿아도 좀 색이 잘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과정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나서 선생님께서 딱 저 졸업하는 바로 전 해에 교수님이 되셨거든요. 원광디지털대학교라는 새로 생긴 학교에. 그 당시에는 전통 예술을 디지털로 배운다는게 말이 좀 안 됐죠. 그런데 저는 제 스승님이 거기 계셨고 또 제 다른 선생님이신 김동원 선생님이 거기 계셨기 때문에 그 학교를 선택해서 공부를 하면서 그 분들과 이제 팀 활동도 같이 했어요. 그래서 저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사실은 책상에서 나오면 바로 이제 실무 역할을 한 거에요. 나가서 사람 만나서 공연 따오고 찌라시 해서 수업 잡아오고 이런 활동을 하면서 팀을 많이 성장시켰어요. 그러면서 그 팀이 이제 해외 활동할 경험도 많아졌어요.
김현채 : 그 팀이 난장앤판인가요?
최수완 : 네 난장앤판입니다. 난장앤판에서 해외로 많이 돌아다니는 경험을 하다가 저희 김동원 선생님하고 다른 선생님께서 호주에 있는 드러머랑 “땡큐 마스터 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셨어요. 그 영화 소식을 듣고 실제로 당시에 김동원 교수님이 사이먼 바커라는 드러머랑 활동을 할 당시에- 이상하게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난장앤판 팀이 호주를 매년 왔다 갔다 했었어요.
거의 6개월에 한 번씩 갈 정도로 많이 갔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호주 가서 그 사람 공연도 보고 그 음악도 많이 들으면서 굉장히 쇼킹한 음악에 많이 매료됐었죠. 한국 음악 굿 장단을 표현하는데 굉장히 멋있는 거예요. 그 사람은 어떻게 접근하길래 저런 연주가 될까? 나는 사물놀이에서 꽹과리 밖에 못 치는데 이렇게 좀 비교를 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좀 유학 과정을 꿈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 해외에 나오고 싶어 했던 계기는 사실 유학이었어요.
그래서 2013-14년도 그때쯤에 호주 유학을 하려고 실제로 준비를 했었어요. 유학비가 상당히 비싸니까 처음에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가서 일을 좀 하고 돈을 모아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운명처럼-그때 당시에는 글로벌 풍물 인스티튜트라는 이름이었는데- 지금 제가 있는 시카고 한국전통예술원 김병석 대표님이 만든 단체 소식을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사실 처음에는 이게 장난인가 뭔가 싶었는데 실제로 이게 저로서는, 호주도 영어권 나라고 미국도 영어권 나라인데 한 곳은 제가 돈을 딴 일을 하면서 벌어야 되는 상황이고 미국은 음악을 계속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됐던 거예요.
그래서 이 둘 중에 저울질을 하게 됐는데 사실 호주를 선택한 것이 경제적으로는 좀 풍족했을 것 같아요.
김현채 : 왜 그런가요? 지나고 보니 그때는 반대로 생각했을 것 같은데.
최수완 : 아니에요. 호주는 이제 일을 더 하러 가는 입장이니까 일이 메인이고 공부하는 건 사이드.. 네. 사실 미국 처음 올 때 조건이 많이 여유롭진 않았어요. 저는 그때 당시 제 마인드셋은 유학을 하고 싶었고 외국 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을 미국으로 하게 됐죠.
김현채 : 그때 유학을 결심했을 때 호주에서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그렇고 뭘 공부하고 싶었어요?
최수완 : 그냥 서양 음악 공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이몬 바커라는 그 연주자가 드러먼인데 굉장히 좀 클래식 드러머는 아니고 오히려 재즈 드러머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리고 좀 실험적인 음악들을 많이 하고 즉흥 많이. 그래서 그런 쪽으로 좀 눈길이 갔던 것 같아요. 제가 국악기로 외국 대학에서 공부를 어떻게 해야 될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요. 주변에 들었던 것도 대부분 이론을 하시는 분들이 유학을 하는 걸 많이 접했기 때문에 제가 그 당시에는 그런 길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많이 막막했죠. 왜냐하면 서양 타악기 실제로 가서 “드럼 쳐봐” 그랬는데 드럼 못 치니까. 그래서 여담이지만 그때 당시 저는 핸드 퍼커션을 되게 많이 관심을 갖고 연습을 했었는데 만약에 호주에 갔더라면 그 핸드 퍼커션 쪽으로 제가 공부를 했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현채 : 그런데 미국에 오면서 여기서 일하는 비자를 받아서 고용이 된 건데 그러면서 유학은 어떻게 알아보셨나요?
최수완 : 호주행 미국행 둘 다 똑같은 단계였는데요. 처음에는 유학부터 생각을 안 했고 돈을 벌 생각이었어요. 호주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학비가 너무 비싸다 보니까 그때 당시 제가 한국에서 모았던 돈으로는 학비 감당이 안 돼서 현지에서 돈을 모으고 그다음에 유학을 생각하자 순서였어요. 그때 당시 2, 3년 정도는 유학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김현채 : 그 당시로는 혹시 얼마큼의 액수가 있으면은 유학을 하겠다라는 목표액 같은 거 있었나요?
최수완 : 제가 계산은 안 했는데 그냥 그때 당시에 5천 생각했던 것 같아요. 1년에 시작할 수 있는 금액이. 제가 그냥 막연하게 5천 갖고 시작하면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부하면서도 조금 조금씩 알바를 할 생각으로-물론 불법이지만- 그 생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김현채 : 그러면 목표대로 그 5천을 만들고 미국에서 입학을 하셨나요?
최수완 : 아니요. 이제 미국 와서 얘기가 달라지는데, 처음 왔을 때는 월급이 사실 제가 그때 당시 한국에서 벌던 것보다 적었어요. 이게 환율을 따져도 훨씬 덜 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제 저는 해외 생활 영어권 생활이라는 거 그냥 하나의 의의를 두고 넘어오게 됐고 실제로 와서 많이 퍽퍽한 삶을 살았죠.
오게 된 그 경로는 P3 비자라고 이제 예술인 비자를 받고 넘어오게 됐는데 P3 비자가 1년마다 갱신을 해야 돼요. 무조건 유효기간이 1년이기 때문에 그래서 처음 미국을 올 때는 경제적으로 좀 버는 돈이 덜해도 1년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고 그다음에 미국에 생활하다 보면은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첫 1년은 제가 또 얼마 안 되지만 모았던 돈을 탈탈 털어서 쓰는 그 1년이었고, 근데 그 1년 동안 열심히 어학원도 다녔고 외국인 만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사실 영어가 생각보다 많이 안 늘어서 유학은 당장 안 되겠다, 영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 하면서 이제 영어 공부를 더 하게 됐고 그래서 미국에 더 있게 됐어요.
그러다가 월급이 연봉 협상을 다시 해도 이렇게 메뚜기가 점프 뛰듯이 한 번에 올라가진 않잖아요.
그래서 비슷한 경제 상황 속에서 다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이제 생기게 된 거죠.
김현채 : 어떻게요? 그 학교 장학금이요?
최수완 : 네. 미국에 온 해가 2015년인데, 그날 여기 일리노이 주에 있는 Northern Illinois University(노던일리노이 대학교) 라는 학교에 몇 년마다 돌아오는 심포지움이 있어요. Teaching World Music이라고. 그게 1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것 같은데 그게 딱 그 해에 열렸고 저희 김병석 대표님하고 거기를 가게 됐어요. 그런데 그 짧은 이틀 동안 많은 세션을 참가하면서 학회를 둘러봤는데, 가끔 공부할 거에 대한 설렘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잖아요, 이걸 공부하면 어떨까 이렇게. 그런 설렘을 느꼈어요. 사실
사람들은 다 영어를 쓰고 있고 저는 굉장히 노력해서 ‘저 단어 썼구나’, ‘이게 이 말인 것 같다’ 이렇게 해석하면서 듣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자리였는데도 발표자가 얘기하는 거에 대해서 청중들이 자유롭게 질문을 하는 것 같고, 되게 웃음꽃이 피고 그러니까 그 현장에서 제가 느꼈던 게 ‘이렇게 음악 교육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이런 즐거움을 얻어갈 수 있겠구나, 이게 보람이다 싶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 좀 가슴이 좀 벅찼던 것 같아요. 설레었고 만약에 저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 대신해서 내가 말할 수 있으면 좀 많이 설레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유학하고 싶은 욕심이 이제 점점 더 불타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해 대학교 심포지엄이 열렸던 대학교에 3개 음악과가 있는데 그 3개 음악과 담당 교수 레이칭 왕(Jui-Ching Wang, 노던일리노이 대학 월드뮤직과)이라는 교수님을 만나게 됐어요. 김병석대표님과 저도 그때 당시에 GPI(Global Pungmul Institute)라는 단체로 일리노이 주 내 시카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 단체였기 때문에 한국 음악도 세계 음악 쪽에 들어가니까 이 월드뮤직과 교수님이랑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져가지고 제가 유학에 관심 있다라고 표했더니 많은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때 미팅을 또 몇 차례 하면서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한 실체화를 좀 준비했었죠. 그래서 2015년에 실제로 학교 갈 수 있겠다를 느꼈고, 그다음에 천천히 토플도 준비하면서 2018년도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김현채 : 아까 얘기한 그 장학금이 레이칭 교수님의 추천으로 학교 장학금을 받아서 입학하신 건가요?
최수완 : 네, 그런데 학비는 제로인데 등록비는 다 냈어요. 코스 학점에 대한 돈은 다 내요.
제 기억에는 tuition은 수업에 대한 비용이고 fee가 또 붙거든요. 한 학기당 tuition은 학점에 따라서 5천 불에서 8천 불 정도인데 그 다음 등록비가 2천 불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김현채 : 그럼 선생님은 그 2천 불만 내신거네요, 한 학기에?
최수완 : 네, 근데 그게 도메스틱 가격이에요. 유학생 가격이 아니고, 유학생 가격은 더 비싸요. 제가 입학할 때 그린 카드가 나왔어요. 제가 처음에 들어갈 때는 인터네셔널이었고 들어가서 도메스틱으로 바뀌었어요.
김현채 : 인터네셔널은 얼마나 더 비싸요?
최수완 : 학부생이 전체 다 해서 2만 불 정도 되는 것 같아요. 1만 5천 불인데 기숙사나 생활비까지 하면은 1년에 이제 3만 불 정도 봐야 되고요.
김현채 : 혹시 다른 학교를 고려해 본 적은 없어요?
최수완 : 있습니다. 지금도 저도 누군가 유학하려고 할 때 좀 해 주는 조언 중에 하난데 한국인 교수가 있는 학교가 좋을 것 같아요. 한국 음악을 공부하는 한국계 교수가 있는 학교가 사실은 제일 공부를 빨리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현채 : 그런 데가 있을까요? 한국 음악을 공부하는 한국인 교수, 진짜 어려운 낮은 확률일 것 같은데.
최수완 : 켄터키 주립대 Donna Kwon교수님 계시고 캐나다에 Nathan교수님이 계세요.
김현채 : 왜 그런 교수님 있는 학교가 더 나을 것 같아요?
최수완 : 이게 만약에 본인 악기나 음악으로 유학을 오게 된다면 그걸로 좀 특기를 잘 살려야 될 것 같거든요. 근데 이게 아무도 이 악기가 뭔지 모르는 현장에 떨어지면은 그냥 호기심으로 끝나는 것 같아요.
이 악기에 대한 태도가 “이건 무슨 악기야”, “이거는 한국 악기구나”, “이거는 뭐로 만들어졌어” 이런 호기심으로 대부분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악기나 음악을 조금 아시는 교수님이 계시면 그거를 더 활용하기가 좋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켄터키에 유학하신 분은 소리꾼이신데 그분은 학교 지역에서 되게 활동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그 담당 교수가 풍물을 연구하시는 분이라서 풍물 앙상블도 하고 있고요. 활용도나 특기적으로나 그 음악을 아는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게 전략적으로 좋은 상황인 것 같아요. 너무 모르는 곳에 있으면은 굉장히 좀 혼자 헤쳐가야 되니까요.
김현채 : 네. 선생님께서 그래도 여기 NIU졸업 후에 지금 강의도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기반이 그래도 NIU도 잘 연결된 것 같은데 그 과정이 험난했나요? 지금 들어보니까 조금 아쉬움이 있으신 것 같은데.
최수완 : 험난까지는 아닌데요. 좀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이제 2018년도에 입학을 하고 나서 많이 느꼈던 게 이제 딱 틈새 시장을 찾게 되더라고요. 내가 이 미국 학교, 이 학회 시장이나 미국 음악 현장에서 뭘 노려야 내가 좀 잘 될까 하는 고민을 했는데 사실 연주자 입장에서 힘들었던 거는 내가 영어 말하기로 이 사람들을 이기기가 힘들다는 것. 그럼 내가 이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게 뭐지 할 때는 제가 제일 잘하는 거 제 음악 밖에는 없었거든요. 내 음악을 어떻게 좀 활용할 수 있을까에서 학교에 앙상블을 가르칠 수 있다, 그룹을 지도할 수 있다라고 제안을 드렸었거든요. 강습은 한국에서도 이제 꾸준히 해왔던 것이라 언어적으로 힘들겠지만 그 과정은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그거를 대쉬를 했었는데 모종의 이유에서 그게 잘 안 됐어요.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저랑 그 담당 교수랑의 이해가 서로 달라서 그랬는데 -짧게 얘기하면은- 저는 할 수 있다 라고 제안을 했고 교수도 그렇구나 라고 얘기를 해준 상태에서 이제 끝난 거예요.(웃음) 제 입장에서 할 수 있다고 했으면은 제가 어떻게 공간을 구하거나 시간을 잡거나 이런거는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교수님이 그거를 해주기를 조금 바랐는데, 아 그렇구나 알겠어 하고 이제 대화가 안 되니까 저는 교수님이 이거를 그냥 OK까지구나 하고 인식을 했고, 교수님은 제가 또 어프로치를 계속 안 하니까 내가 안 하고 싶구나라고 이제 서로 느꼈던 거예요. 그래서 이게 또 영혼의 벽인가를 또 한번 느꼈던..(웃음)
김현채 : 그러니까 어떤 커뮤니케이션의 방법, 미국에서 우리가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훨씬 적극적으로 그리고 내 자리를 내가 멍석을 펴야 되는, 누가 펴주지 않는, 이런 문화의 차이였을까요?
최수완 : 네. 그리고 나중에 지나서 담당 교수랑 얘기를 했는데 그때 하나 배웠던 거는 대화가 물론 설왕설래지만 어떤 일적으로 얘기를 꺼낼 때는 A to Z로, 1부터 10까지 좀 제안을 자세히 하는 게 좋은 대화의 시작이라고 얘기를 받았던 것 같아요. 이게 할 수 있다 정도가 아니라, 제 케이스로 예를 들면 실제로 육하 원칙이나, 제가 이 수업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자세한 계획 같은 거를 전달해야 듣는 이도 이게 되고, 이건 안 되고, 이렇게 얘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실제로 그 뒤로도 저는 영어권 다른 일이랑 얘기를 할 때 저는 사실 Yes or No라는 답을 들을 수 있는 질문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공연 업무인데 누군가가 공연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은 ‘할 수 있어’가 아니고 ‘우리는 이걸 할 수 있고, 이걸 하면 이렇게 된다. 괜찮냐?’ 이렇게 물어보는 타입인 것 같아요.
김현채 :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거 그걸 가능하면 구체적으로 말을 해서 좀 대화가 진전되게끔 만드는. 약간 팁인 것 같은데, 한국 사람들은 이메일을 안 하고 내용은 구두로 하고 마지막에 서류만 이메일로 보낸다든지 이런데, 미국에서는 이메일로 모든 것을 다 나누잖아요.
그래서 한 일을 성사시키는데 이메일이 몇 십 개가 왔다 갔다 해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여기 와서 배우는데, 그런 이메일 티키타카가 되게 촘촘하게 됐을 때 일이 잘 되고 그러지 않나.
최수완 : 맞아요. 이메일 티키타카 그거를 꼭 알려줘야 돼요.
김현채 : 이메일에 대한 반응 속도도 그렇고요. 며칠이 지났는데 답이 없으면 아 이 사람이 관심 없나 보다 이런 느낌을 가지기도 하고, 또 이메일이 너무 짧게 답이 오면 이 사람이 여기에는 아직 별 생각이 없나 보다 이런 인상을 좀 갖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한국에 있는 분들이 가끔 미국에 공연 올 때 “이메일 확인하셨어요?” 그러면 “제가 이메일을 잘 안 봐서요.” 이런 경우들을 되게 많이 봐서. 또 이메일을 되게 이모티콘을 써가며 잘 지내셨나 약간 근황토크처럼 하거나, 안 그러면은 기획자들은 좀 딱딱하게 뭔가 공문서처럼 쓰지, 미국하고는 좀 다른 맥락으로 하는 것 같아 가지고 그 차이를 아는 게 미국에 올 때 중요한 팁인 것 같아요. 유럽도 물론이고요. 지금 선생님이 하고 계시는 KPAC에서의 일도 주로 이메일로 이루어지잖아요. 제가 옆에서 보면 상당 시간을 이메일 보고 답하는 걸로 보내실 것 같은데, 선생님의 지금 예술 감독으로서 하고 있는 역할 선생님의 업무 리스트 이런 거 좀 소개해 주세요.
최수완 : 네. 2021년에 이제 학교를 졸업하게 돼서 그 다음에 다시 일했던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예술원이 이제 규모가 커지면서 업무에 대한 세분화가 좀 필요해져서 제가 이제 예술 감독이라는 역할을 맡게 됐는데, 사실 거창한 단어인데- 제가 너무 부족해가지고,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긴 한데- 일단 예술적으로 뭘 감독하는 일이 많은 건 아니고 공연 업무가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이 공연 업무에는 저희 예술원으로 의뢰 들어오는 의뢰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과 그 다음에 공연을 갔을 때 현장에서 해야 되는 업무들, 현장 담당자를 만나거나 현장의 무대를 챙겨주거나 이 공연이 잘 흘러가게끔 관리하는 게 저의 제일 큰 업무입니다. 그래서 여러 공연을 다니게 됐죠. 그런데 느낀 점은 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인데 공연 현장이 좀 비교적 열악한 환경이 아직까지는 많은 것 같아요.
김현채 : 한국과 비교했을 때 그런 걸 느끼세요?
최수완 : 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청양고추축제를 하러 간다 그러면은 -실제로 몇 번 가봤는데- 그런 축제나 행사가 있으면 꼭 무대 장치를 잘 꾸며요. 무대, 스피커, 음향 장치, 이런 것들을 잘 구비하고 관객들도 앉을 수 있는 의자 세팅을 쭉 잘하고. 그래서 한국에서의 이 행사장 세팅이 저는 좀 당연하게 느꼈죠. 한국에서 자랐으니까. 근데 미국에서의 행사 세팅은 정말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어떤 곳은 그냥 주차장에서 아무것도 없이, 의자, 마이크 이런 거 하나도 없이 그냥 주차장에서, 차 옆에서 공연하고. 어떤 곳은 공원인데 잔디밭이 저기가 무슨 스팟이구나 하고 느끼게 좀 섹션이 나눠지는 데가 있는 그런 데서 공연하고, 누군가 블루투스 스피커 가져와가지고 블루투스 노래방 마이크로 사회 하면서 할 때도 있고. 그리고 제가 다녀온 미국의 내셔널 그룹인데, NTCA 라는 곳에서 민속 축제를 매년 하는데 거기는 행사장 인프라가 딱 정해졌어요. 그래서 거의 한 마을에 여러 장소를 섭외해서 그 장소마다 세팅을 조금씩 다르게 특색 있는 공연을 꾸미고, 그런 메이저한 축제는 물론 인프라가 너무 잘 돼 있습니다. 먹거리 무대 장치, 음향 장치 연주자들 대기실 이런 것들이 너무 잘 돼 있습니다.
이렇게 극과 극이 나눠져가지고 사실은 공연 전 단계에서 커뮤니케이션 단계에서 필요한 것들을 다 얘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이 커뮤니케이션 단계에서 얘기가 한 90%가 OK 상태에서 공연을 가면은 가끔은 얘기된 게 전혀 안 될 때도 있고, 얘기는 된 거지만 전혀 다른게 준비돼 있는 경우도 있고 그 변수가 아직까지는 되게 많은 것 같아요. 미국이 메이저 한 공연이 아니라면 그런 부분을 사실 계속해서 트레킹하는 게 조금은 피곤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또 적응이 돼서 그만큼 ‘여기는 이런 곳이구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이렇게 맞춰서 하고 오는 경우도 있고 그래요.
김현채 : 제가 같이 일을 하면서 보니까 그런걸 또 느끼는데, 최수완선생님의 되게 큰 일 중에 하나가 리스크 관리인 것 같아요.(웃음) 새로운 곳에 워낙 많이 가고 그 새로운 곳의 환경이라는 것이 한국에서보다 이 극과 극이라는 게, 가끔은 상상을 초월할 때가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바로 대응을 해야 되잖아요. 공연을 못 하고 올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엄청난 리스크인데 그거가 선생님의 주된 업무에요.
최수완 :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김현채 : 그리고 그거는 노하우가 필요하고 소통으로 해결해 나가야 되니까 대체 불가능하네요. 우리가 한국에서 다니던 곳들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기본은 갖춰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는 그게 없는 곳들이 있어서, 가끔은 우리가 디그레이드 된 것 같기도 해요.(웃음)
최수완 : 디그레이딩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이게 되게 음악과도 좀 되게 밀착돼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왔을 때 요즘 말로 현타라고 하죠. 자괴감, 그리고 자존감과 자존심이 저 지하 6층까지 내려가는 그런 것을 음악적인 것에서 많이 느끼게 됐어요. 예를 들면, 제가 미국 처음 와서 가르치게 된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 학생들이 공연할 기회가 있었어요. 공연할 기회가 있으면 제가 같이 해야 되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근데 이제 당연히 이 학생들은 열심히 하고 너무 잘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전문 연주자랑 이 초등학생들이 절대 같은 레벨링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이 초등학생들과 같이 하려면은 전문 연주자가 다운 그레이드 해야하는거죠. 제가 학생한테 맞추면 아무 문제가 없이 가장 빠르게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근데 이 다운그레이드 하는 상황이 전문 연주자로서 하는 연주의 양보다 더 많거든요. 여기에 사물놀이를 같이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가 없었어요. 전문 연주자가 반대로 이 학생 그룹 아니면 제가 가르치고 있던 어르신 그룹들과 연주할 상황이 더 많은 거예요. 진짜 공연할 때 한번은 이 관객들이 웃고 있는데 저도 웃으면서 이제 머릿속으로 ‘여기가 어디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공연장에서도 예술가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출연료 문제죠. 레이디 가가나 빌리 아일리시 이런 메이저 가수들이 한 번 공연하면은 진짜 어마어마한 액수를 받는다고 알고 있어요. 근데 그거는 어마어마한 메이저 시장이니까. 근데 반대로 미국에서 말하는 이 마이너 시장-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한국음악이 마이너 시장에 들어가는 음악이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데-제가 처음에 공연했을 때 어마어마한 금액을 받았습니다. 30불을 받았습니다.(웃음) 근데 심지어는 무료로 하는 공연이 훨씬 더 많았고 감사하게도 받은 금액이 이제 30불이었는데, 이게 돈의 액수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굉장히 중요하게 된 거죠. 왜냐하면 저희는 공연으로, 음악 활동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되는데 한국에서도 흔히 말하는 오부리나 객원 출연이나 이런 것들이 사실은 큰 부수입이 된다라고 생각하거든요. 주수입은 따로 있다고 해도. 근데 미국에 와서 열심히 연주해도 받는 금액이 한국에서 하는 거 거의 10분의 1, 반토막이어도 그냥 OK 하겠는데, 이건 진짜 코딱지만큼 받게 되니까 굉장히 심리적인 타격으로 오더라고요. 이런 질문이 30불을 받고 나서 생기는데 어떤 질문이었냐면, ‘나 음악 못하겠는데?’ 이 질문이 딱 생기더라고요. 만약에 모든 공연을 했을 때 이렇게 30불, 50불, 20불, 100불 이렇게 받는다 그러면은 한 달에 공연을 일주일에 두세 번 해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정도가 아닌 거예요. 오히려 공연을 가는 게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면은 내가 경제적인 추가 수익을 뭘로 만들어야 되느냐 고민을 하게 되면서 거기서 또 이제 또 다운그레이드가 생기게 되는 거죠. 음악이 첫 번째가 안 돼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
그리고 또 이건 미국 생활하면서 느낄 수 밖에 없는 건데, 미국에는 100% 음악 전공자가 한국보다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음악 활동이 풀 타임 뮤지션이 정말 드물 정도로 많이 없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도 초반에 콜라보 작업할 때 섹소폰, 드러머, 다른 기타 리스트들이 있었는데 저는 수업이 오후에 있으니까 주로 오전 시간이 됐어요. 그래서 그 콜라보 하시는 분들한테 우리 연습하자, 오전 10시 어때? 그러면은 저기 이제 일 있어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일 있어서라는게 다른 연주 활동이 있나보다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일을 하러 가는 거예요. 출근해야 되고, 여기 극장에서 관리직 하고 있어서 극장 나가서 일해야 되고. 그러면서 알게 된게 대다수의 음악가들이 day job과 음악을 병행해요. 이 데이잡은 9 to 5하고, 낮 시간에 하는 일이죠. 그래서 이 데이잡과 음악을 병행하는데 이제 여기서 또 현타가 오는 거에요. 그럼 이 사람들은 데이잡과 음악을 병행하는데 나는 하루 종일 음악을 연습하고 있고 그럼 이게 같은 아웃풋이 나올 수 있나? 이게 이 사람과 연습을 해서 내가 공연을 만드는 게 맞는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냐하면 코로나 전까지는 한국에서 국악 전공하시는 분들이 거의 풀타임 전공자 분들밖에 없으니까 그때까지는 투잡의 개념이 굉장히 약했죠. 저도 물론 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이걸 느꼈을 때 또 레벨링이 달라지는 거예요. 제가 느낄 때는 이 사람의 음악에 대한 노력도나 어떤 열정은 많겠죠. 근데 노력이 저보다는 가벼울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하루 종일 시간을 음악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연습이 되게 좀 무의미하다고 해야 되나, 내가 이만큼 연습해서 이만큼 연습하는 사람이랑 뭘 맞춰야 되는 거지라는 좀 질문이 많아요.
그래서 또 반대로 말하면 이 사람들하고 리허설할 때 그 리허설이 되게 인텐시브 해요.
쉽게 말해서 2시간 걸릴 거를 30분 안에 끝낸다든지 인텐시브하게 짧게 연습을 마칠 때도 있고 리허설을 되게 텐션 높게 할 때도 있고. 그래서 이런 실제로 음악 활동에서 느끼는 많은 다운그레이드가 좀 심리적으로 작용할 때도 많고 그래서 많은 생각을 좀 던져주고 많은 숙제를 주는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이제 이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아메리카나이즈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좀 익숙해져서 그냥 물 흐르듯이 가고 있습니다. 강은 강이고 산은 산이다.(웃음)
김현채 : 마지막 질문으로 한번 가볼게요. 지금 누군가가 미국에 활동하러 왔어요 그러면 어떤 어드바이스를 해주실 것 같은가요?
최수완 : 돈 많이 들고 와.(웃음) 아, 농담이고요. 저는 겁이 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미국으로 올 때 저도 그랬고 오시는 모든 분들이 다 그럴 텐데, 미국에 얼마 동안 있던지 한국에서 갖고 있던 거를 놓고 오셔야 되는 부분이 꼭 생기거든요. 근데 그 놓고 오신 거에 대한 미련이 클수록 미국 생활이 더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미국 와서 많은 분들이 미국 위험하지 않아 또 시카고는 총기 사건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죠. 근데 저는 총을 본 적도 없고 총알도 본 적도 없어요. 시카고에서 그 정도로 안전한데, 미국 생활을 직접적으로 안 해본 사람들의 어떤 걱정거리들을 먼저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대신에 와서 진짜 미국 현장에서 느끼실 것들을 많이 느낄 수 있게 겁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채 :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지금 다 겁없는 사람 여기 있는 것 같아요.(웃음) 만약에 선생님이 지금 막 미국에 왔다. 그러면은 뭐부터 할 것 같아요?
최수완 : 네 저는 챗gpt를 최대한 많이 활용할 것 같습니다. 챗gpt를 이용해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내 주변의 음식점 내가 할 수 있는 활동들도 찾아볼 수 있고. 그게 앉아서 할 수 있는 거지만 실제로는 집 밖으로 나가야 된다 그러면은 저는 당연히 음악 공연장을 많이 갈 것 같아요. 공연을 더 많이 볼 것 같아요.
그래서 묘하게 미국만의 어떤 공연장의 분위기가 되게 다르고 매력 있는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청양고추 축제에서 더운 날 선캡을 눌러쓰고 부채를 흔들면서 춤추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떤 한국 행사장의 분위기라면, 미국 분위기는 venue마다 되게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장소를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음악가로서의 영감도 조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실제로 이렇게 받은 것도 많이 있고요. 그래서 장르를 안 가리고 공연장을 좀 많이 갈 것 같습니다.
김현채 : 영어 공부에 처음에 많이 투자하셨잖아요. 영어에 대해서는 어떤 팁이 있을까요?
최수완 : 저는 회화를 배우지 마시고 시험을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토익이든지 토플이라든지 아이엘츠라든지. 그런 시험을 준비하는 게 실제로 영어가 더 많이 느는 것 같아요. 회화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단어를 외우는 게 저는 더 효과적이라고 느끼고요. 저는 사람이 영어를 대하는 태도를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 저도 지금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진 않지만 지금 영어를 불편하게 하는 정도는 아니거든요, 근데 제가 영어를 쓰는 거는 딱 도구 수준으로 쓰는 것 같아요. 식당에서 쓰는 영어, 공연장에서 쓰는 영어, 영화관에서 쓰는 영어, 학교에서 쓰는 영어 딱 그 상황마다 필요한 영어들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딱 거기에 맞는 영어만 쓸 줄 알면 된다라고 생각을 해요. 다시 말하면 애초에 원어민처럼 되는 거를 버리고 내가 외국인 입장에서 영어를 쓰는 거라고 생각하면 공부할 것들이 딱 정해지는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완벽한 발음, 완벽한 문법, 완벽한 액센트, 이런 거를 너무 먼저 추구하시다 보면 실제로 말이 너무 힘드신 것 같아요. 저는 만약에 공부를 하신다면 시험 공부하는 거를 추천드립니다.
김현채: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음악박사 (DMA), 서울대학교 국악과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미국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KPAC) 상주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트링웨이 대표이다.
최수완: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 졸업, 전통연희단 난장앤판 공연팀장 및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청주시립관현악단 단원 역임, 노던일리노이대학교 세계음악학과 교육론 석사, 현재 미국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KPAC) 예술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