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민-피리연주자/Director of Korean Music at UCLA

김현채 : ‘가민’으로 활동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가민’의 뜻은 무엇인가요? 

가민 : 2008년부터 예명을 쓰면서 제 음반을 가민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했어요. 어려서부터 다른 이름을 갖고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아름다운' ‘옥돌'이라는 뜻의 가민-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사용하기 시작해서 이제는 본명이 되었어요. 특히 해외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민'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고 좋았어요.

김현채 : 어떻게 해외로 활동무대를 옮기게 되셨나요? 

가민 : 국립국악원 단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할 때 우연히 미국과 파리에 공연을 하러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 때 굉장히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서, 다시 꼭 그 무대에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에 돌아갔었죠. 그 후 3년 후에, 문화관광부 선정 뉴욕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뉴욕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저의 활동 무대가 뉴욕으로 서서히 옮겨가게 되었어요. 다양한 음악을 경험하고 제가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던 현대음악을 연주하면서 제 활동의 토대가 자연스럽게 옮겨지게 되었어요. 그래도 한국을 떠났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지난 14년동안 늘 한국과 미국을 오고가면서 생활했고, 한국에서도 공연활동을 했으니까요. 독립 예술가로서의 삶은 힘든 부분이 여러가지 많이 있지만, 창작을 통해서 기쁨 맛보는 것 같아요.

김현채 : 한국에서 국악원 창작악단에서 피리 수석을 하면서 개인 연주활동도 활발하게 하셨었는데, 그런 국내 경력이 해외활동에도 도움이 되셨나요?

가민 : 한국에서의 경력은 제 음악 인생에 중요한 경험과 이력이 되었지만, 막상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점 에서는 한국의 경력은 중요하지 않았던것 같아요. 오히려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뉴욕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있었던 게 아무래도 첫 경험이다보니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가 스스로 기획해서 직접 공연장이나 갤러리 등을 찾아가서 이런 공연을 하고 싶다 고 제안하기도 하고, 새로 만난 아티스트들과 지속적인 콜라보를 하기도 해서 어떤 프로젝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하다보니까 뉴욕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며 많은 음악적 경험을 했던 레지던시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전환점이었지만, 다른 많은 경험을 떠올리면 각각이 다 소중한 경험을 주었던 것 같아요.

김현채 :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측면에서 미국과 한국이 어떤 면에서 다른가요? 

가민 : 그 이야기를 하려면 제가 처음 레지던스 했을 때 2011년도로 돌아가 봐야할거 같은데요, 그 때만해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국악연주자는 드물었어요. 대부분 관현악단에서 활동했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적었는데 그 이후에 후배들이 하는 활동을 보니까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기회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이제는 관현악단이라는 플랫폼을 거치지 않아도 국악연주자로 생존하는 방법은 많이 생겼어요.  저는 개인활동을 하고 있긴 했어도 관현악단 시스템을  벗어나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들이 열려있다는 것 자체가 더 신선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연주하는 창작국악, 현대음악이라는 영역을 봐도 한국음악의 창작이라는 범주가 그 땐 지금보다 좀 더 좁았던 것 같아요. 제가 뉴욕에서 즉흥연주자들과 잼했던 경험이나 장르는 극히 제한적이었어서 그게 신선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음악들이 우리 음악의 창작의 영역이라고 적립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제가 새롭게 접한 음악은 훨씬 새롭고 광범위하고 자유롭다고 여겨졌던 것 같아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제가 생황을 24관 37관 하는 것 조차도 부전공 개념으로 생각했고 한국교육시스템의 영향으로 한 가지에 매진해야한다는 것이 강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죠. 지금은 즉흥음악이 다시 트렌디하게 됐지만, 사실은 한국에서 제가 즉흥음악을 한다고 하면, 너는 악보를 잘 보는데 즉흥음악을 왜? 하면서 즉흥음악은 악보를 못 보는 사람들이 하는 음악으로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창작음악 범주는 바라보는 시야가 좁았던 거죠.

내가 경험한 한국음악 밖에서의 경험은 더 다양하고 넓없고, 음악의 우열과 관계없이 많은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달랐던거죠. 그리고 한국에서는 역사적, 문화적 사대주의가 팽배해서 우리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말로는 강조했지만, 사실 한국인들은, 심지어 한국음악인들 조차도 국악에 관심이 없잖아요. 국악이라는게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죠. 오히려 한국 밖에서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 속에서 한국음악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고 느꼈어요. 물론 미국 내에도 인종과 문화에 대한 차별이 있지만, 워낙에 다양성에 대한 태도가 있기 때문에 다른 음악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국 안에서조차 국악기를 위한 작품에 관심을 갖는 작곡자가 별로 없는데, 비교적 미국은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의 차원에서 국악기를 위한 작품에 관심갖는 작곡가가 많아요.

한국의 작곡가들이 프리랜서라는 개념을 거치긴 하지만 사실 공연예술계가 독자적으로 튼튼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연주장에서 연주되는 공연들이 학교나 협회나 연구회 등등의 인스티튜션에 기반한 활동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잖아요. 그런거에 비하면 뉴욕에서 내가 경험한 많은 경험들은 개개인의 활동들을 포함해 훨씬 다양하고 독자적인 개인활동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의 예술활동 내용도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고요. 조직 안에서의 활동, 조직이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 그런거에 연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열려 있어요. 

저는 항상 국립국악원 단원 역임 같은 타이틀이 늘 따라다니지만, 한국 밖에서는 저의 타이틀이 더 다양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연주자로서 활동하지만 한국음악을 소개하거나 가르치는 등 문화를 접하고 알려주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면서 제가 설명하는 방식을 여러가지로 연구하다보니 저 스스로 더 연구를 한다든지 고민하고 노력하게 되는거 같아요. 저한테 요구되는 영역들이 더 넓어지니까요.

김현채 : 여기서 학교를 나오시거나 어떤 소속기관 없이 순수 개인아티스트로 활동하고 계신데, 현지 인맥은 어떻게 만들어가셨나요?

가민 : 네트워크 면에서는 사실 여기서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그게 굉장히 중요할 수 있죠. 그러나 저는 그런 네트워크 기반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 활동은 음악활동이기 때문에 주로 개별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주축인 것 같아요. 누가 소개해준 아티스트와 만나서 잼한다거나 아티스트 대 아티스트로 만나는거죠. 제가 공연을 보러 가서 만나거나 내 공연 보러 와서 만난 사람들도 있고요, 그게 전부에요. 그런데 내가 하고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고 그걸 통해서 다른 기회가 생기고 그랬던 것 같아요. 단 한 번도 매니지먼트를 가져본 적도 없고 어디 기관에 소속된 적도 없는데, 그런 면에서도 아까 얘기한 것 처럼 이 예술계의 독자적인 생태가 튼튼하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꼭 어느 학교를 나와서, 어느 협회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독자적 활동이 지속 가능한 생태계라는 것. 저 뿐 아니라 그렇게 뉴욕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이 전세계에서 오는 아티스트들이 그렇게 시작해요. 미국 전체라기 보다 뉴욕의 특수한 환경일수도 있을것 같아요. 

또 음악은 사람을 통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내가 하나의 작은 만남,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되는 것 같아요. 음악계 안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저 사람이 알고 저 사람이 아는 누구를 내가 알고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관계가 생겨요. 내가 먼저 두드리고 공격적으로 하는 때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도 우연히 생긴 작은 만남들을 무시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공연 의뢰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소개해 줄 수도 있고. 그런 경우들이 종종 있어요.

김현채 : 현재 UCLA한국음악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이신데, 현재 어떤 커리큘럼들이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가민 : 저의 정식타이틀은 디렉터 오브 뮤직 오브 코리아, 말하자면 대학 강사에요. 유씨엘에이 민족음악학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됐고 그런만큼 규모가 커요. Ethnomusicology Department가 있고 Music Department가 따로 있어요. 1950년대부터 생겨서 여러 나라 전통음악 앙상블 코스도 많이 생겨났어요. 그렇게 한국음악앙상블도 한참 유지되다가 10년 정도 중단됐었는데 제가 가면서 다시 부활이 된거에요. 학교에 소속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부터 각 앙상블이 독자적인 펀드로 운영되는 시스템으로 바꼈어요. 그래서 실제로 없어진 것들도 있고 지금은 15개 정도의 앙상블이 있는데, 각자의 사정이 달라요. 기금이 없으면 운영이 어렵고 지금도 충분치 않아서 방법을 찾아야하는 상황이에요. 어쨌든 현재 Music of Korea는 한국음악의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고 실제로 연주하고 배우는 실습 클래스에요. 많지는  않지만 가야금 몇 대, 사물놀이 악기, 피리가 있어서 악기들을 실제로 배우고 공연하는 수업이에요. 한국음악을 모르는 학생들도 있고 음악전공이 아닌 학생들 및 다양한 학생들이 와요. 이 친구들이 어떻게 한국음악을 배울 것이며, 무엇을 배울 것인지 여러가지들을 생각해야 하죠. 학교 수업은 쿼터제라 한 학기가 10주로 돼있어서 짧고 학교에 있는 악기들의 수량이나 상태도 매우 열악한데, 중요한건 한국음악을 통해서 한국문화를 배운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이 수업을 통해서 한국의 노래, 간단한 민요 몇 개라도 배우고 같이 앙상블 만들고 무대에 서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커뮤니티 활동도 연계해서 한인커뮤니티에 현장 학습을 가기도 하는 등, 한국문화를 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김현채 : 사실 미국에 다들 오고 싶은데 비자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우리 아티스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비자들이 어떤 것들이 있고 각 비자의 장단점이 있다면요?

가민 : 장기 체류를 위한 O1 아티스트 비자는 1년 혹은 3년 단위로 받을 수 있지만, 짧게 연주 방문을 위한 P3 비자나 교환 연구활동을 위한 J1 비자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체류 목적이 달랐어요. J1은 Asian Cultural Council에서 펠로우십으로 비자를 제공해주니까 받은거였고, 그게 끝나고는 셀프 페티션(개인신청)으로 아티스트 비자를 받았어요. 지금은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데 영주권도 스폰서를 안 받고 셀프 페티션으로 했어요. 한국에서 왔다갔다 할 때 공연비자 받은 적도 있었고요. O1은 영주권과 똑같이, 지난 활동 내역과 앞으로의 계획을 문서로 정리해서 제출을 했어요. 한국을 자주 갔거든요, 매년 갔고 거의 10년을 다녔기 때문에 영주권이 있으면 한국 체류에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자가 맞겠다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고 팬데믹 때 영주권을 받은 거에요. 그리고 영주권으로 인해서 제약을 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미국에 6개월을 꼭 있어야 된다는 제약이 싫었거든요, 한국에 여러달 있고 싶을 수도 있고 투어차 많이 다니기도 하니까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거점을 옮기는 사람이 많은 거 같은데 저 같은 경우는 자유롭게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던거 같아요. 미국에 입출국할 때 문제가 있을까봐. 그런데 시간이 10년 정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하는 음악활동이 한국에서 했던 것과 많이 달라지고 어느 정도 갭이 더 커지며서 자연스럽게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지게 되고 영주권도 받은 것 같아요.

김현채 : 앞으로 미국에서 아티스트 활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좋은 곳이 있으면 추천도 부탁드려요.

가민 : 추천하고 싶은 곳은 젊은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창작프로그램으로 오마이 레지던시라고 한국에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거쳐간 프로그램 있고요, 실크로드 앙상블에서 매년 열고 있는 글로벌 뮤지션스 워크샵 프로그램도 추천합니다.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기를 추천해요. 마음속에서 원하는 것을 따라가세요. 준비라면 마음의 준비인 것 같아요. 나한테 어떤 열망, 갈망 그런게 있고 새로운 거에 대한 호기심, 뭔가 찾고싶은 욕구, 그런게 나는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은. 왜냐하면 이건 로케이션의 문제는 아닌거 같아요. 나는 그대로고 로케이션만 바뀐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고, 나의 마음가짐이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런 것들이 열리고 그랬을 때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걸 발견하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지 나는 그대로고 내가 생각하는 것도 그대로고 내가 하는 것도 그대로인데 환경만 바뀐다고 해서 뭔가 마법이 일어나는건 아니니까요. 물론 모든걸 바꿀 필요는 없고 나는 그대로겠지만, 새로운 세상을 접했을 때는 나의 유연함이 있어야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것들에 대한 시선, 생각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 김현채 : 가야금연주가/교육자. 현재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KPAC) 상주예술가. 스트링웨이 대표.

  • 가민 : 피리연주가/교육자.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역임. 현재 UCLA 한국음악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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