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보-연출가/리퀴드사운드 대표

김현채 : 해외로 나가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이인보 : 공연을 만들고 싶었고 이런 공연을 만들려면 연출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왜 굳이 나가야 했나? 하나하나 따지지 않고, 계획하지 않고, 나가야겠다고 불현듯이 생각했어요. 준비는 3년 정도 했는데,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군대에 있을 때 프랑스에서 살다 온 친구가 학비가 공짜라고 하길래 그 말에 혹했어요.(웃음) 군대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알아보고 유학원 찾아다니고 어학원도 다녔어요. 서울대에서 연출하는 선생님이 하시는 “공연창작실습” 이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프랑스는 실험적인 면이 있고 괜찮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시더라고요. 

또 대학생 시절 청소년관현악단을 하면서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음향, 조명 연출, 의상 등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연출을 하면 좋겠다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그 시기에 동기 중에 한 친구가 “국악하는 사람들이 예술인일까?”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내가 바로 “당연하지!”라는 답을 못했었어요. 그래서 내가 왜 못 했을까를 찾다가 생각이 깊어졌는데… 뭔가 창작하고 만드는 사람들을 예술인이라고 생각했었던거 같아요. 지금 다시 그 질문을 한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고, (가끔 아닌 사람도 보지만요) 저 스스로도 예술인이고 싶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현채 : 예술인과 예술을 다루지만 예술인이 아닌 사람을 나누는 나름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이인보 : 반짝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너무 개인적인 기준이라 혼자서만 생각하는 것이지만 눈이 반짝반짝한 사람이 있어요. 습관적이지 않고 계속 변하거나 시간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이요. 무대에 서고 안 서고의 문제가 아니고, 기획자이건 교육자이건 반짝이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매일 무대에 회색 빛으로 있는 사람들 보다 반짝이는 사람이 더 좋아보여요. 그럼 삶속에 직업과 상관없이 그냥 반짝이는 사람들을 다 예술인으로 보느냐고 물으시면, 예술이 무엇인지도 깊이 있게 이야기를 해봐야겠죠.

김현채 : 학부 때 대금을 전공하셨는데 유학가서는 연출 공부를 하셨죠? 

이인보 : 처음에는 파리8대학에서 연극과 학사 3학년에 편입해서 학사를 졸업하고 석사까지 연극으로 졸업했어요. 박사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수님 말씀이 박사는 이론 공부인데 넌 한국에서 음악연주도 했으니 계속 공연 만드는 쪽으로 가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저의 석사 졸업 발표 주제도 영향이 있었는데, “무대위에서 쓰여지는 음악과 영상”이라는 주제로 음악이 단순 콘서트가 아닌 다른 예술과 합해졌을 때 어떻게 쓰여지고 있고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가에 대한 발표였거든요. 제 관심 분야도 그렇다보니 현장에서 공연만드는 쪽으로 학업을 이어가라는 조언이었어요. 그래서 파리8대학 음악과를 다시 들어가서 컴퓨터음악을 공부하고 수료를 했어요. 이후 파리3대학으로 옮겨서 메디에이션 컬쳐라는 전공으로, 한국말로 하자면 문화의 매개자, 가 되는데, 주로 기획과 홍보에 관련된 내용을 공부했어요. 

김현채 : 프랑스에서 11년간 유학생활 및 아티스트 활동을 하시다가 2021년에 귀국하셨는데, 계기가 있나요? 

이인보 : 학업을 마친 후에 예술가 비자 3년 짜리를 어렵게 받았으나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비교적 한국에서는 활동하기 편리했죠. 예를 들어 가야금 필요하면 가야금이 있고…. 그런데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려면 나가려는 노력 만큼 힘들어요. 한국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저한테는 한국이 메리트가 더 있었어요. 환경은 프랑스가 예술가 인구가 더 많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갭이 꽤 커요. 프로의 계열로 들어가기 매우 힘들죠. 극장에서 정식 초청이 돼서 들어가고 싶었는데 쉽지 않아서, 그것 보다 한국에서 더 잘 만들어서 해외 바이어들이 사가는게 더 효과적이겠다고 생각했요. 또 개인적으로는 첫째, 둘째 아이가 모두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키우고 있었는데 셋째가 태어날 즈음 코로나가 터지고 한국에 돌아가야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김현채 : 아티스트로 산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한국이 다른 점은?

이인보 : 문화가 많이 달라요. 다 같이 살려고 해서 배울 점이 많아요. 느린 사람이고 빠른 사람이고, 나라가 전체적으로 한국보다 속도가 느리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려는 문화에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가 프랑스 헌법의 1조 1항이잖아요. 작은 예로 제 아들이 학교에 갔는데 돼지고기를 먹는지 물어봤어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같이 사니까 그런 식으로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마인드가 일상적이에요. 어떻게 보면 불편한거고 굳이 그래야 해?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그 사회의 장점이고 사회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한 번은 외국인학생들에게 학비를 받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프랑스 현지 학생들이 반대했어요. 외국인학생들에게도 자신들과 평등한 학습권을 보장하라고. 우리 같으면 자기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텐데 말이죠.  

공연문화도 많이 달라요. 공연을 보러가면 실험적인 공연과 망한 공연들이 엄청 많아요. 준비가 덜 돼서 엉망인 그런 공연들도 많은데 그걸 돈 내고 봐요. 관객들도 기본 마인드가 달라요. 제가 만두바에서 일하면서 만난 한 손님에게 오늘 공연 좋았냐 물어보면 좋았다, 10번에 2번 정도만 좋았도 이번달은 성공이야 하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도 프랑스인들이 공연을 보러 다니는건, 저 사람이 예술을 통해 뭘 하려는 거지? 왜 저걸 하지? 에 대한 기본적인 궁금증이 있어요. 드러난 작품 이면에 저 사람은 뭐 때문에 저런 행위를 할까 하는 더 깊은 고민이 있어요. 반면에 우리는 완성도를 중요시 하잖아요. 저의 요즘 고민이기도 한데, 우리가 한국사회에서 쫓고 있는 완성도라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한 진정 찾고자 하는 것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완성도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완성도를 만들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 등의 투자가 있잖아요, 그러다보면 못 보고 가는 것들이 오히려 있는거 같아요. 프랑스에서는 많은 공연들이 오히려 완성도를 버리고 관객들도 그걸 수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오히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에 더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김현채 : 어학(불어)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언어 장벽의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이인보 : 학교 입학 전에 종로 어학원을 다니고 제대 후 복학해서 4학년 다니면서 학교에서 프랑스어 수업도 들었어요. 한국에서 프랑스어 자격증. A1 A2 따고 프랑스 가서 어학원을 7개월 정도 다녔어요. 보통 B1 B2를 해야 입학할 수 있는데, B1 따고 8대학 지원을 했더니 학교 다니면서 어학공부를 병행하라고 해서 교내에 있는 어학수업을 들으면서 그렇게 했어요. 언어가 늘 어렵긴 하지만, 워낙에 다문화인 나라여서 오픈된 편이에요. 한 번은 어떤 친구가 저한테 내가 너희 나라 언어를 몰라서 미안해라고 하더라고요. 언어가 완벽하면 좋겠죠, 그러나 그걸 완벽하게 한 후에 다음걸 해야지 하는건 아닌것 같아요. 어차피 완벽할 순 없으니까 같이 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언어공부를 하더라도 어학공부에서 하는 언어랑 학교에서 하는 언어는 다르기 때문에 다니면서 실제로 부딪히면서 배우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현채 : 프랑스에 가기 전의 이인보와 돌아온 후의 이인보는 어떻게 다른가요?  

이인보 : 정체성이 바뀌었죠. 가기 전에는 ‘대금하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연출가’로. 그런데 연출가나 예술가라는게 언제부터 가능한지 궁금했어요. 다른 연출가와 얘기하면서도 그게 문턱이 낮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아마 2010 년쯤부터 연출가라는 정체성이 생긴것 같아요, 그 전엔 우주에 떠 있는 느낌이었어요. 대금 연주자로써 연주를 잘 해야하고, 이 소리를 어떻게 내야하는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살다가 떠나와서는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게 되었어요. 공연을 많이 봤어요. 음악뿐 아니라 무용을 제일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공연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어요. 축구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연출가란 전체를 봐야하는 사람이니까요. 소통해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구요. 음악가들과 대화할 때는 이런 단어를 써서 이런 내용을 얘기해야 해야지 한다면, 조명감독과는 또 다른 언어로 다른 내용을 말해야하고 그런거죠. 맡은 역할이 달라짐에 따라 당연한거 같아요. 전통음악 공연을 보러갔을 때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거 같아요. 예전엔 당장 이 음이 맞냐 소리 크기는 어떻냐, 얼마나 완성도 있게 연주하냐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어떤게 완성된거고 과연 그게 중요한건지, 앉아서 보는거랑 서서 보는거랑 다른건지, 얼마나 중요한건지. 어떤 사람한텐 그게 큰 차이인데, 저는 그거 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또는 그 것도 중요하지만 또 중요한게 있지 않을까. 연주자가 이동하는 것, 시각적인 것, 공간을 만드는 것, 관객이 어떤 상태로 있어야 한다던가 하는 것, 음 이외의 모든 것들이요. 우리가 기존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것들도 중요한데, 혹시 그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놓치고 있는게 있지 않은가, 그런 질문을 많이 던져요.     

김현채 : 11년 프랑스 생활 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이인보 : 2016년에 프랑스에서 리퀴드 사운드라는 이름으로 연출활동을 시작했어요. 한국 와서도 리퀴드 사운드로 안무가, 연출, 무대디자인, 작곡가 네 명이 한국 전통예술을 어떻게 보냐를 가지고 꾸준히 작업하고 있어요. 전통예술의 활동영역, 예술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무용, 거리극, 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요. 결국 우리가 지금의 예술을 한다면 “현대예술”을 하는건데, 지금의 공연이 뭐냐라는 질문은 이미 다른 장르들이 했던 질문이고, 이미 끝난 질문이거든요. 현대미술이 있고 현대무용이 있으면, 과연 현대 국악은? 그들은 어떤 것을 중요시하고 있는가.. 전통예술을 계속하는 건가? 탈피하려는 건가? 이런 질문들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만들자 였어요. 저는 전통을 “가장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표현이라서” 하고 있어요. 내 곁에 있고, 내가 편한 나의 언어니까. 저는 연출가 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출신임에 변함이 없는 것처럼, 전통예술 출신임이 변함이 없어요.

김현채 :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어떤 것인가요? 

이인보 : 판소리, 정가 등 전통노래로 작업한 “조각 눈”이라는 작품을 막 어제 쇼케이스 했어요. 프로젝트 이름은 “사운드 스페이스”에요. 판소리의 ‘판’이 어떤 공간이라는 뜻이잖아요, 공간이라는 개념이 현대음악에서도 매우 중요하거든요. 이 공간을 어떻게 음향적으로 공간감있게 하느냐가 중요해서, 옛날의 공간은 무엇이었고 지금의 공간은 무엇인지,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또 판소리에서 스토리상 중요한 대목들을 “눈대목”이라고 말하는데, 지금도 그 대목들이 중요한가, 지금은 중요한게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착안했어요. 판소리에서 중요한건 서사인데, 오히려 이야기 표현에 집중함으로써 놓치고 가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에, 서사를 다 덜어내서 음악적으로 해석해서 판소리와 정가가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그걸 재배열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 김현채: 가야금연주가/교육자. 현재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KPAC) 상주예술가. 스트링웨이 대표.

  • 이인보: 연출가.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파리8대학 연극과 석사 졸업, 현재 리퀴드사운드 대표.

Previous
Previous

Inbo Lee - Artistic Director / Director of Liquid Sound

Next
Next

Gamin - Piri Performer / Director of Korean Music at UC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