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윤 - 대금연주자 / 즉흥음악가

김현채 : 해외에 나가게 된 스토리와 유학을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송지윤 : 대학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어떤 필드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되게 커졌어요. 대금 연주자라는 정체성으로 할 수 있는 관현악활동과 솔리스트로를 협연할 수 있는 기회들도 있었지만 팀을 만들어서 새로운 활동들도 너무 해보고 싶었어서 당시에 두 개의 팀활동을 했었어요. ‘나리랑’이라는 팀으로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에 나가서 대상을 받았었고, 한국과 몽골, 베트남 연주자들이 모인 ‘아시안뮤직앙상블AME’라는 팀을 만들어서 아시아 지역의 음악들을 서로 경험하면서 새로운 작품들도 창작해서 최근까지 활동을 해왔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5년 정도를 그렇게, 말하자면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면서 모두가 하는 똑같은 고민, 내가 어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이냐라는 고민을 저도 하게 됐죠. 악단 오디션을 봐야 되나 아니면은 이렇게 프리랜서로 계속 활동하는 게 나한테 맞는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실제로 창작악단 시험도 봤는데 최종 면접 2명까지 뽑혔다가 잔인하게 떨어졌죠.(웃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내가 하는 작업들을 설명할 때 계속해서 전통의 모티브를 가지고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해왔는데, 과연 내가 새로운 것을 하고 있나? 잘은 모르겠지만, 새로운 곳으로 가면 뭔가 새로운 게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어차피 내가 프리랜서로 활동을 할 거라면 지역이 상관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유럽이라는 곳에 내가 지금하고 있는 활동을 고스란히 가져가서 시도해 보는 걸로 시작을 했어요. 처음에는 파리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선 라이징 프로그램이라고 젊은 연주자들을 위한 독주회를 열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서류와 동영상 제출 후 선발이 돼서 했었어요.

김현채 : 당시 파리에서 한 독주회의 레퍼토리는 뭐였나요? 

송지윤 : 그 땐 한국에서 많이 하는 것처럼 정악, 산조, 창작곡 이런 식으로 제가 국내에서 했던 독주회 레퍼토리들을 했죠. 이후에는 국제교류 지원금도 받아서 AME팀을 데리고 가서 솔로콘서트를 두 번이나 했어요. 제가 하고 있는 팀의 음악이 비아시아권인 유럽권에서 흥미 있어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침 또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들을 계속 확장해 나가는 방향으로 했어요. 완전 훌륭한 극장이 아니더라도 복합문화공간처럼 제가 접근할 수 있는 venue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지고 디렉터한테 전달을 해서 잘 얘기를 하면 할 수 있었거든요. 또 Museum Guimet라는 큰 아시아 박물관이 있는데 거기 디렉터와 어떻게 연결이 돼서 거기서도 공연을 하게 되었었죠.

김현채 :  되게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아티스트가 직접 오퍼를 넣은 거네요.

송지윤 : 엄청 넣었죠. 저도 잘 모르니까 이런 씨앗들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 라는 마음으로 그때 당시에 할 수 있는 총력을 기울여서 내 콘텐츠들을 외국 공연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한 1~2년 했어요.

김현채 :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그걸 먼저 한 거네요? 그런데 왜 파리라는 지역을 선택했나요?

송지윤 : 그건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요. 사실 대학교 3학년 때 뉴욕에 한 6개월 정도 머문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내가 막 음악을 공부해야지 이런 생각은 없었고 그냥 새로운 곳에서 한번 살아보면서 문화를 알아보자 라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있었는데 내가 만약 그 때 미국이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면 미국에 다시 가야지 생각했을텐데 미국을 선택하지 않은 것 저로서도 신기했어요. 내가 처음부터 의도해서 정한 건 아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미국보다 유럽이 속도가 느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느린 유럽의 속도가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계속해서 자기의 시각이나 자기의 생각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을 충분히 겪을 수 있는거죠. 내가 뭐 하나를 하는데 그 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면서 내가 왜, 또는 이건 왜 필요한가,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이런 것들을 계속 곱씹으면서 가는 기회를 계속 학교에서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유럽이 나한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김현채 : 그러다가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송지윤 : 공연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 유럽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가 아닌 다른 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강렬하고 그런 것들을 자기들이 알게 되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문화를 가졌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너무 좋아해주긴 했지만 근데 이 문화를 소개하고 그 다음 기회로 좀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은 안 드는 거에요. 새롭고 신기한 것에서 끝나는 것 같고, 나는 계속 여기서 전통 음악가의 정체성으로만 소비가 된다고 해야 되나.. 나는 여기서 새로운 뭔가를 찾으러 왔는데 계속 여기서 전통음악만 연주할 수는 없잖아요. 유럽은 워낙 기차로 이 나라 저 나라 갈 수 있으니까, 그럼 다른 곳에 가서 또 한국 전통 연주를 해 그럼? 이거 어떡하지? 그런 고민을 하다가 이제 학교라는 것을 좋은 수단으로 한번 삼아 보자고 생각을 하게 된거죠.

김현채 : 그럼 본인에 맞는 학교와 전공은 어떻게 찾았나요?

송지윤 : 먼저 다른 한국 유학생들처럼 콘서바토리의 피아노나 성악 전공으로 등록을 해서 학생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옵션도 있었어요. 레벨에 차이가 없이 일단 낮은 데로 들어가면 되고, 또 어학으로 학생 비자를 할 수 있는 게 최대 2년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 더 연장하려면 콘서버토리에 이 어학 시험 점수를 가지고 들어가는 게 가능하니까. 또 음악이론-뮤지컬로지 같은 경우는 또 불어로 공부를 해야되니까 어려워서 피아노나 성악처럼 실기 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한인들 사이에서는 알려져있는 방법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이라도 대금과 비슷한 플룻을 배워야 되나 아니면 재즈학과로 들어가야 하나, 내 악기로 할 수 있는 전공들을 찾으면서 저의 서칭이 시작이 됐어요.

그렇게 파리에 가까운 콘소바토리 목록을 A4에다 써보니까 한 20 몇 개 나왔었던 것 같아. 그걸 책상 앞에 붙여놓고 도장 깨기를 하나씩 한 거에요. 하나하나 인터넷으로 먼저 서칭을 해보고 학교에도 직접 가서 비서한테 물어보고, 메일 보내보고 그런 식으로 하나씩 안 되겠다 싶은 곳은 줄을 그어가면서 도장 깨기를 했어요. 그러다가 거기에 있는 서양 음악하는 유학생들한테 소개를 받아서 어디 가면 뭐가 있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파리고등음악원에 갔어요. 거기에 현대음악과가 있는데 거기 선생님이 또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이야. 그래서 그 교수님이 오신다는 공연을 친구와 같이 보러가서 공연 끝나고 인사를 드리면서 얘길했죠. 제가 이러이러한 연주자인데 그 과에 혹시 제 악기가 들어갈 수 있는지, 그랬더니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셔서 이제 공식적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그러나 입학 시험이 문제였어요.

김현채 : 실기로 시험을 봐야한다면 국악기인 대금은 뭘 봐야했나요?

시험 지정곡들이 있었는데 그거를 내가 아무리 어떻게 대금으로 소화를 한다고 해도 사실 무리가 있었죠. 그래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거의 한 1년 걸린 것 같아요. 그 콘소바토리를 찾아가고 리스트에서 지우고 그렇게 진짜 맨땅에 헤딩을 했어요. 그러다가 사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파리 시립 콘서바토리 중에 하나에 즉흥연주과가 있다고 하는 거에요. 게다가 모집 요강에 악기 제한이 없다고 써있었을 거에요. 그래서 이메일을 보고 오디션 날짜를 기다린 다음에 보게 됐어요. 갔더니 의자를 빙 둘러가지고 20명 안 된 사람들이 와있었어요. 그때 알게 된 사실은 이 임프로비제이션과가 생긴 지 2년 차였던 거에요. 

그러니까 정말 생긴 지 얼마 안 됐던 거죠. 유럽에서 유일하게 파리에서 처음으로 그 과를 만든 거였어요.

김현채 : 완전히 타이밍이 너무 좋았네요.

송지윤 : 너무 타이밍이 좋았고 시험이 자유곡이었어요. 저한테는 한 줄기 빛 같은 느낌이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뭔가 전통적인 걸 보여주려고 대바람 소리에 카덴자 같은 걸 연주했었던 것도 같고 나름대로 즉흥연주를 애쓰면서 한 거에요. 한 20분 정도 봤던 것 같아. 신기하게도 끝나고 그 자리에서 평가를 해줬어요. 그때 같이 시험 본 사람은 한 4-5 명 정도 정도였던 것 같은데 시험이 다 끝나니까 모두 들어오라고 했어요. 그러더니 다 있는 앞에서 합격자를 알려주더라고요. 저 포함 3명이 붙었어요. 그 때 정말 그 합격 소식을 듣고 집에 오는데 너무 좋았어요. 

김현채 : 정말 오랜 서치와 고민 끝에 받은 결과라 더욱 값졌을 것 같아요. 배움의 과정은 어땠나요?

송지윤 : 파리에서 처음으로 즉흥연주 공연을 한 것이 생각나요. 프로 즉흥 연주자들 두 명이랑 하게 됐는데 1시간 동안 그들과 연주한 즉흥의 경험이 정말 강렬했고 따로 내가 어떤 학교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그 짧은 1시간 공연 안에서 그들이 나한테 다 가르쳐준 것 같았어요. 그때 그 경험을 처음 한 거에요.. 이 즉흥 음악이라는 것이 이런거구나.. 같이 연주한 분들이 너무 노련한 연주자였기 때문에 나를 가이드 해 준다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머릿속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야지라는 것이 싹 지워지고 정말 소리와 음악이 그 에너지로 교환되면서 진짜 자유롭게 내 안에 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약간 접신된 느낌?! 뭔가 즉흥이라는 게 이런 거였나라는 걸 내가 즉흥을 잘 모를 때 나도 모르게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김현채 : 즉흥음악이란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주하는 건가요?

송지윤 : 즉흥 음악을 하는 방법에는 정말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구조가 없는 음악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구조있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거고요. 결국에 내 안에 어떤 음악이 있는지를 내가 자유롭게 표현해내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과 즉흥적으로 대화를 한다고 한다면, 내 말에는 

내가 평소에 하는 생각들과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대화에 나타나잖아요, 그 것과 비슷해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재료들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동안 어떤 음악들이 내 안에 쌓여 있는지, 또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런 스킬들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설사 그 동안 내 안에 많은 음악을 쌓아 왔고 가진게 많다고 하더라도 표현 방식을 내가 다듬지 않으면 즉흥적으로 나와야 할 때 힘들 수 있기 때문에 매 순간에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 다듬어 가야 되는 거죠.

김현채 : 그래서 그런가, 저는 예전에 즉흥음악을 들었을 때는 다소 거칠다고 느꼈는데 몇 해 전 지윤씨 공연을 봤을 때는 뭔가 정제 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꼭 필요한 소리만 내고 있다고 느꼈어요. 즉흥이지만 연주하면서 어떤 소리를 내겠다는 방향성이 있나요?

송지윤 : 맞아요, 방향성이 있어요. 내가 무슨 음악을 하고 싶은지, 지금 이 라이브를 통해서 뭘 하고 싶은지가 있고 또 그에 따라 연주자마다 색깔이 다르기도 하죠.

김현채 : 재미있네요. 그럼 석사과정을 마친 후에는요? 

송지윤 : 제가 졸업 연주를 하고 이제 한국에 돌아가야 되나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는 찰나에 정말 우연히 인터넷 서치를 하다가 파리 폴슈페리어라는 고급과정에서 즉흥창작음악과가 생겼다는걸 알게 되었어요. 이 폴슈페리어는 파리에 있는 3개의 콘소바토리, 즉 파리시립 콘서바토리와 고등음악원 그리고 파리 블로뉴 콘소바토리에서 하나의 통합과정을 만들어서 교수들이 로테이션으로 가르치는 과정이었어요.

그것도 생긴지 2년 차에 제가 발견한거고 입학지원서 마감 3일 전에 알게 돼서 급하게 원서를 냈던 기억이 나요. 오디션도 꽤 길게 3-4시간 정도 봤는데 벌써 분위기가 달랐어요. 왜냐하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정된 것 2개, 자유곡 1개, 그리고 면접 이렇게 4가지였거든요. 지정곡 중 하나는 미리 알려주지 않고 당일에 들어갔더니 양쪽에 큰 스피커 두 개가 서 있었어요. 그러다가 어느순간 거기서 백색 소음으로 된 전자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거기에 맞춰서 즉흥을 했어야 되는 거였어요. 다행히 합격을 해서 그 마스터 과정을 들어가게 됐고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콘소바토리에서 실기를 듣고 유니버시티에 가서 이론 수업을 들었어야 했어요.

김현채 : 계속해서 배우겠다는 갈망이 컸던 것 같은데 그런 동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송지윤 : 그곳에서 저는 아무것도 없는 이방인이고 내가 아무리 한국에서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슨 활동을 했고 해도 거기선 아무도 모르는거잖아요.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저는 그냥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0을 채워야 되니까 계속해서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거죠. 한 번은 내가 아는 대금의 새로운 주법들을 가지고 나름 내가 얼마나 전통적이지 않고 내 악기로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지 거기 선생님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걸 듣더니 “니 음악이 너무 전통적이야. 지윤, 그걸 깨야 돼” 그러시는 거에요. 거기서 완전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전통적이라는 게 뭘까에서부터 다시

기존의 선입견을 계속 깨는 과정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완전 저 자신을 리셋하는 과정이었어요.

김현채 : 즉흥음악은 많은 경험이 또 필요할 것 같아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송지윤 : 개인적으로 필드 경험을 많이 쌓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어요. 베를린을 자주 갔는데 어디를 가면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지 서치를 해서 악기 하나 메고 한 일주일씩 내 돈을 들여서 기차타고 자발적 산공부?(웃음)를 다녔죠. 1년에 두세 번씩 주기적으로 가서 공연 보고 거기서 알게 되는 친구들하고 잼을 한다든지, 공연 기회를 만들어서 그 다음 번에 베를린 갈 때는 콘서트로 이어지는 식으로요. 그렇게 필드에서 야생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느껴보는 것과 학교에서 트레이닝으로 하는 것,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져가야만 이 음악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렇게 계속했어요.

김현채 : 한국에 오신 후에도 즉흥음악 모임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소개 좀 해주세요.

송지윤 : 모임MOIM이라는 워크샵을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는데요 즉흥연주의 진입 장벽을 낮추려고 만들었어요. 경험을 해봐야 내가 이 음악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알고 또 이런 것도 있구나를 알게 되는 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즉흥을 하면서 연주 표현력과 그 음악을 듣는 방법, 앙상블을 세심하게 만들어가는 방법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클래식이나 다른 음악을 하는 학생들에게도 많이 적용을 하고 있어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즉흥연주 수업을 듣기가 조금 어렵고 사실 트레이닝 방법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접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그냥 구경이라도 와서 이렇구나 하면서 나도 해볼까 하지 않을까 하기도 하고, 여기서는 뭘 해도 된다 그런 마인드에요.

김현채 : 지금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어떤 어드바이스를 주고 싶나요? 

송지윤 : 빨리 적응하고 싶으면 일단 어학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하라고 하고 싶어요. 빨리 어학을 하면 할수록 빨리 적응을 하고 문화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게 되니까요. 내가 받아들이려고 하고 교류하려고 하는 마음도요. 저는 찐I(introvert)라서 혼자 있는 거 너무 좋아하고 그냥 혼자 수업 듣고 집에 가고 싶은데 교류하려고 일부러 노력하고 그랬어요. 친구를 사귀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애들이 담배 피면 옆에서 커피 하나씩 뽑아가지고 그냥 따라가고,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이렇게 듣고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베를린 같은 데 가서 아무도 모르는데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보기도 하고 일단 가서 뒤풀이 자리에서 와인이나 맥주 하나 들고 얘기 듣고. 그런 마음가짐요. 

저는 지금 한국에 나와서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유럽으로 나오고 있어서 나름대로 한국에서 내 작업을 하다가도 내가 서칭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냥 내 돈을 내서라도 한 일주일, 열흘씩 공연들 보고 서칭하고 베뉴도 가보고 그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요. 이건 내 작업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사실 그건 한국에 있었어도 외국에 있었어도 내가 해나가야 되는 거고, 그거는 어딜 가나 똑같은 부분일 것 같아요.


  • 김현채: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음악박사 (DMA), 서울대학교 국악과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미국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KPAC) 상주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트링웨이 대표이다. 

  • 송지윤: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학사/석사), 파리 폴슈페리어 즉흥창작음악과 졸업 (석사), 현재 MoIM (Meeting of Improvising Musicians) 리더로서 다수 공연 기획 및 연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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